
"장미와여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화가 민진이 그림 작품을 글로 옮겨 놓은 흥미로운 '작가 노트'를 만나보았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소회를 담은 에세이로 생각하고 선택한 책이 민진이라는 화가의 동명의 개인전을 찾아보게 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을, 그림 속 이야기를 소설로 표현하고 있어서 화가의 그림을 만나봐야 작가의 소설이 이해될 것 같았다. 그림 작품에 담은 생각을 이야기로 다시 한번 탄생시킨 멋진 소설《상림월想林月》에는 그, 그녀, 남자, 여자의 각자의 숲이 있다. 그리고 그 숲에 달빛이 비칠 때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p.19. 그의 숲의 변화를 알아차린 그녀는 절망했다.
그래도 그녀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작은 나뭇가지는 잘자라나갔다.
그때쯤이었다.
홍학들이 사는 숲에 사는 남자가 그녀의 숲을 지긋이 바라보던 때가.
작가 민진의 그림 작품을 보기 전에 접한 소설은 불륜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고 있는 가벼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민진 작가의 작품을 보고 느낀 감성을 가지고 만난 소설은 달빛만큼이나 깊고 아름다운 색을 보여주고 있다. 밝지만 태양처럼 뜨겁지 않게,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지만 우리에게는 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달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파장이 우리들의 숲의 모습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작품에서 숲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달 속에 그려진 숲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의도를 모두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같은 시를 읽어도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사람과 금방 이별한 이의 느낌은 다를 테니 말이다. 그의 숲과 그녀의 숲, 남자의 숲과 여자의 숲에서 벌어진 일들이 달빛을 통해서 서로의 숲으로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표지에 등장한 홍학과 장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면 남자의 숲을 방문하면 된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기 전에 그의 숲도, 그녀의 숲도 방문해 보길 권한다.

사색하는 숲에 뜬 달이라는 《상림월想林月》의 부제는 이 책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하지만 짐작은 딱 거기까지다. 표지의 그림에서 두 마리의 홍학이 더 가까이 다가선다면 하트가 그려질지도 모르는데 중심을 비워둔 까닭은 무엇일까? 주제나 소재만 보면 참 평범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인데 글 속에 그림을 담고, 행간에 그림의 주제를 품고 있어서 특별한 소설이 되고 있다. 나의 숲속에 달빛이 비칠 때, 나의 숲에 엄청난 바람이 불어올 때 아마도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그림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그림이 되는 특별한 공간으로 빠져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