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테일님의 서재
  • 의자 뺏기
  • 박하령
  • 13,500원 (10%750)
  • 2025-09-25
  • : 575


 "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파괴해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고로 나의 삐뚤어짐은 성장의 전조이다. 과거의 삐뚤어짐이 엇나감이었다면 이제 나의 삐뚤어짐은 존재의 외침에 부응하는 건강한 파격이다. 난 삐뚤어져야 한다! 그게 마땅한 일이다. 107"

 이상하게도 '의자 뺏기'를 읽으면서 전에 봤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101개의 자리가 순서대로 놓여져 있던 그 세트장. 처음엔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101개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없어지는 자리와 같이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알리려고 애쓰던 참가자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을 뿐인 누군가의 절박함을 바라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생존 경쟁 방식으로 된 티비 프로그램을 일부러 안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의자 뺏기'를 읽다가 그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전에는 그저 끝끝내 자리를 지켜내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기쁨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제와서는 자신의 자리가 없었던 사람들이 신경쓰였다.

 처음 은오는 왜 지오가 리포트를 숨긴게 아니라고, 희수의 책상에서 시연이가 뭔가를 빼가는 것을 봤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승미가 무섭더라도, 자신이 본 결정적인 장면을 밝혔다면 상황이 뒤집어질 수 있었을텐데 누구보다 가까운 편이 되어줄 지오를 두고 다른데서 자리를 찾으려고 눈치보는 은오의 모습이 답답했다. 그러다 하나씩 왜 은오와 지오 사이에 거리감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되면서 은오를 지켜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의자를 뺏기거나 양보해야 했던 은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주변이 하나같이 어렵기만 했다. 누구든 은오에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솔직히 말해주었어야 했다. 은오 곁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자만을 좇아 제멋대로 사라져버릴 때마다 안타까웠다. 부산에서 만난 아주머니보다 그 애의 마음을 들여봐주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서 평생을 두고 은오는 앉아본 적 없는 의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은오가 시달린 것에 비해서 풀어가는 과정은 오히려 짧고 아쉬웠다. 이마만큼의 큰 상처가 겨우 이런 순간들로 풀리고 덮일 수 있을까. 은오가 여전히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삐뚤어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파괴 속에서 청소년 소설다운 성장의 여지를 남기며 끝을 맺었지만 어딘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은오는 정말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지, 그래도 괜찮을지 한참을 가만히 생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젠가 앉아보고 싶었는데, 나만 앉지 못한 채 서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의자 뺏기'안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의자를 뺏는데에만 익숙해보여서 은오보다도 내가 더 미워했다. 누구 하나만 힘들면 나머지가 편할 수 있다는 말을 어린애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말을 어린애가 이해해서도 안됐다.

 앉아보고 싶었던 자리, 앉을 자리가 없어서 가만히 서서 다른 사람의 자리를 바라보아야 했던 때를 떠올리며 '의자 뺏기'를 읽는 사람들이 이 결말에서 희망만을 골라 가져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뒤돌아보다 다시 앞을 봤을 때 내가 앉을 수 있었던 자리도 있었음을, 때로는 그 의자의 비좁은 자리에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서 나눌 수도 있었음을, 앉지 못한 의자 대신 새로운 의자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