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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의 책과 생각
  • 사대부시대의 사회사
  • 유승원
  • 22,500원 (10%1,250)
  • 2020-06-01
  • : 411
조선의 사회구조에 관한 책으로 저자의 강의안을 정리한 책입니다.

사회학적인 계급론적 측면과 법제적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조선의 신분제를 다루었습니다.

조선의 전기부터 후기까지 포괄한 전 기간에 걸쳐 조선의 사회구조및 계급에 대해 고찰하고 조선의 정치. 경제를 제도적 측면에서 고찰했습니다.

핵심적인 사항위주로 정리되어 있어 가독성이 훌륭합니다.

이 책은 조선의 신분제를 전혀 새로운 학설로 여겨지는 양천제(良賤制)로 보고 왜 조선이 양천제를 시행한 사회인지 설명합니다.

여태 우리가 알고있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4계층 신분 사회라는 주장은 일제 초기 다나카 도쿠타로 (田中德太郞)라는 조선총독부 통역관이 조선 사회에 대해 쓴 유람기에서 유래했고 연구논문이 아닌 피상적 관찰기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주장이 고착화되어 교과서에까지 실린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출처를 밝히고 조속히 수정되었으면 합니다.

신분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 책은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정의하는 양인(良人)과 천민(賤民)에 대해 설명합니다.

양인은 사대부를 포함한 일반적인 상민(常民)을 말하며 군주의 통치대상의 모든 백성을 말합니다. 천민은 죄를 지어 형사적 처벌을 받아 상민의 권리를 박탈당한 신분을 말합니다.

따라서 법제적 관점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면 천민은 존재할 수없는 신분입이다.

양인 신분은 과거에 합격해 정부관리가 된 사대부와 일반 양인으로 나누어집니다.

저자에 따르면 사대부는 국왕을 도와 조선사회를 통치하는 지배계층으로 철저하게 능력에 따른 선발제도를 거쳐 선발되었고, 조선 초기에는 사대부 계급과 양인 사이에 차별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으나 16세기 중종대를 거치며 조선이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기본 이데올로기로 유교화되고 그 차별이 고착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대부와 양인 모두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었고, 오직 천민 신분인 노비들만 이런 의무에서 면제되었습니다.

국왕의 통치대상이 아니고 신민으로 취급받지 못해 신민의 의무도 질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 천민인 노비는 대부분 지주계급인 사대부 가문의 농업생산과 기타 여러 잡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사대부들이 중앙정계에서 국왕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데 그 물질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조선 중기가 지나고 후기로 갈수록 인구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James B. Palais)는 조선이 ‘노예제 사회(slave society)’가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서구학자의 주장이 노비=농노로 보는 일반적인 서구학자들의 개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노비가 다른 사회의 노예와 다른 점은 ‘인격권’이 인정되었다는 점으로 단지 재산취급을 받고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고대 로마의 노예나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의 노예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조선은 사대부 계급의 존재로 인해 국왕의 왕권이 많이 제한되었던 나라로 전제군주제 국가이지만 신권이 왕권을 능가하거나 최소 많은 제약을 가했던 나라입니다.

국왕의 왕권이 네차례 ( 태종, 세조, 중종, 인조) 찬탈(簒奪)되었고 건국 초기인 태종 때를 제외한 나머지 세정은 근본주의적 성리학이 국가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고 군신관계가 부모 자식관계와 같다고 여겨지던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끝의 두번의 왕위찬탈은 반정(反正), 즉 옳지 못한 것이 바로잡힌다는 명분으로 사대부들에게 인식되어 사대부의 권력이 사실상 국왕을 능가하는 상황을 정당화해주는 계기가 됩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조선을 현재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최소 사회의 모순은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 사대부 지배계급이 유교적 이념을 기반으로 의리 (義理)를 근본으로 삼는 정치를 펼쳤으나 물질적 기반을 등한시하고 국방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당상관(堂上官)이상의 거의 모든 고위관리가 문관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16세기 이후의 전란이나 외국과의 분쟁에 휘말릴 때 물질적 군사적 고려를 할 수 없는 지배층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단지 조선 후기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이 사실이 매우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둘째 조선 사대부가 추종한 통치 이데올로기가 민생중심보다 자신의 정신적 수련을 강조하는 수기(修己)중심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를 보는 시각이 결여되고 뜬구름 잡는 고담준론에 치우칠 위험이 존재합니다.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金尙憲,1570-1652)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이 얼마나 대책없고 무모했는지 소설과 영화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청군에 맞서 변변한 군사력도 없이 남한산성이 갇혀 공성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신세인데도, 백성들 생각은 안하고 명과의 의리만 생각하고 해결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조선이 토지를 비롯한 재산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강조된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제 정치 체제였지만 조선의 토지소유권이 확립되어 있었다고 보았고 실제 농지의 매매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농지 이외의 땅은 모두 국가소유로 보고 모든 백성들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재적 발전론 관점에서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체계화시키기 노력한 책이지만 계급적 관점에서 조선사회를 바라본 점은 신선했지만 경제문제는 사적소유권이 인정되었다는 점 말고 경제 자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인상입니다.

사료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조세제도 이외에 다른 설명이 부족한 건 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조선은 굉장히 독특하게 경제를 운용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런 경제체제도 후기에 들어 소수의 문벌과 외척세력의 영향 아래 들어가 결국 조선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조선의 경제관련문제는 조금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제를 주로 공부해서 그런지, 정치와 경제의 연관성을 보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는데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은 경제와 국방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조선의 역사를 서구 학자들이 보는 틀에 맞출 필요도 없지만 조선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나라였는지는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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