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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sy님의 서재
  •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 메리 파이퍼
  • 14,400원 (10%800)
  • 2020-06-15
  • : 1,043

이 책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글 하나를 발견한다.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큰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은 절망과 체념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쪽은 완전한 소멸로 이어진다. 부디 우리에게 지혜가 있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우디 앨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의 선택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깔린)

우리 앞에 체념과 절망 그리고 완전한 소멸만 있다는 우디 앨런의 말처럼 지금 우리의 상황은 충분히

나쁘다. 삶이 쉬웠던 적은 없으나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그 오늘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 있어 수백년 이전에는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만 해결하면 됐다. 오랜 시간 인간은 대륙

저멀리는 커녕 바로 앞 산 너머의 일도 모르고 살았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알았다. 그러던 인류가 과도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게 되자 우리 대다수는 그들이

뿜어내는 넘쳐나는 자극과 어찌할지를 모르는 무력감이 한데 얽혀 불안과 절망에 빠진다. 그렇게

우리는 '실존적 무지(existential blindness)'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고 비인격화하고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언어는 무기가 된다. '우리와

다르다'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들에겐 더 이상 문명화된 행동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불법 체류자를

뜻하는 'illegal alien'이 좋은 예다. '불법'이라는 의미의 'illegal'이나 '외국인 체류자' 혹은 '이질적인'이라는

의미의 'alien', 두 단어 모두 지칭하는 사람을 우리와 분리시킨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법인 사람도,

이질적인 사람도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말하는 '나와 너 관계(I-thou relationship)'를 기억해야 한다. 부버는

'나와 그것'과 '나와 너'의 관계를 구분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피상적으로

다룬다. '그것'은 그저 우리의 목적을 돕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마치 은행원은 우리에게 돈을 내어주거나

받아 주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와 너'의 관계로 옮겨간

은행원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꿈도 있고, 욕망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존재가 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봐야 비로소 상대를 향한 존중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나'와 '너'가 '우리'의 관계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꼬리표를 달면 그들의 인간성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럴수 없도록 우리와 그들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져야 할 책임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의 역사, 그들의 가족, 그들의 감정, 그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일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연결해야 한다. 연결하면 책임감이 생긴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얽혀 있다. 변화를 촉진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의식이 있는 작가는 자기 글 면면에 진정성과 투명성이 배어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독자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고 애쓴다. 또 혼자 힘으로 얻기

어려운 아이디어와 경험으로 독자를 이끌고 연결해준다. 이런 유형의 글은 언제나 독자가 준거의 틀을

넓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더 큰 그릇(bigger container)'에 물건을 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영혼의 성장이란 공감, 명료함, 선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키워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더 잘 감응할 뿐만 아니라, 구별하기를 걷어내고 연대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특정한 종류의 지혜를 향한 여정이며, 그 지혜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사다. 줄루족에게는 연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

이 책에는 글쓰기에 대한 최고의 조언이 들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어라는 말은 쓰지 말아라. 말할 필요가

없다면 안하면 된다. 여러분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인생이 엿 같다'이면 독자들은 그걸 모면하게 해줘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기에 말에 다리가 달려 멀리 달아난다. 작가는 수많은 길을 제각기 걷지만 하나의

교차로에서 마주친다. 그중 하나가 '관찰'이다. 작가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흡수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대화를

엿듣고, 쉴 새 없이 읽고, 자기가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하철이나 상점에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읽는지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렇게 관찰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이다. 관찰에 대해 틱낫한은 이렇게 말한다. '깊이

들여다 봐야 볼 수 있다. 헤엄을 치며 맑은 강물을 즐길 때, 우리 또한 강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영감을 북돋는다. 계속 써라. 성공했다면 계속 써라. 실패해도 계속 써라. 흥미를 느꼈다면 계속 써라.

지루하다면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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