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맞이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는 더 많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연대하는 것이었다. 1월 2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다이인(Die-in) 행동 참여를 위해 안국역을 찾았다. 처음 마주한 현장은 그야말로 막막했다. 이동권 시위에 대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태도를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불법 행위로 못박았다. 승강장에 누워서 이동권 투쟁이 그동안 마주쳐 왔을 어려움을 생각했다. 세상은 변한 것 하나 없단 생각이 들었다. 2019년에 출간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묘사된 사회의 모습은 2025년에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일인지에 몰두했던 2019년의 나에게 이 책은 나와 다른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에게 조금 더 섬세하게 눈을 돌리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내가 얼마나 쉽게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인 내가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면, 나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닌 강자로서 그들을 차별하는 셈이며 그 중에서도 여성 난민은 나와 달리 이중의 억압을 경험한다. 이렇듯 여러 사회적 정체성은 교차하며 나를 항상 약자이거나 강자의 자리에만 두지 않는다. 즉, 같은 여성이라도 각자가 처한 삶의 조건에 따라 차별을 다르게 경험하는 셈이다. 게다가 차별이 이미 당연한 구조로서 자리잡은 상황에서는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일이 방해를 받으며, 내가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제목 그대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생겨나는 이유다.
책은 더 나아가 문제 삼기 어려운 방식으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룬다. 소수자를 조롱하며 웃는 이들은 우월감과 편견을 조장하면서도 소수자의 문제제기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능력주의를 공정의 충분조건으로 여기는 이들은 능력에 따른 차등이 간접차별을 초래하며 되레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주민과 외국인, 성소수자, 장애인을 ‘다른’ 사람으로 구분하며 차별하는 현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출간 후 5년이 지났음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에도 일부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웹툰 등 미디어에서 소수자가 재현되는 방식이 수차례 문제된 바 있고, 심지어 정치인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등한 세상 만들기는 요원한 걸까? 변화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차별에 더욱 민감해지기로 한 사람들과 그 주변인의 실천에 주목하고 싶다. 미디어와 정치, 일부 차별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리지만 우리 역시 그것은 차별이라고 비판할 수 있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차별 철폐에 동참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차별에 민감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밝혀내고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것은 나 스스로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진 유리한 조건을 당연한 듯 여기며 살다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만나 그것의 존재를 자각하고 놀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평등한 세상이 그대로인 것 같아서 무력해질 때에도, 나와 내 곁의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만들어 온 변화와 앞으로 만들어 낼 가능성을 헤아리기로 했다. 최근 광장에서는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낸 이들에게 많은 사람이 환호를 보냈다. 지난달 안국역에서 나는 동료 시민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고, 소수자 집단을 하나씩 호명한 뒤 연대 의사를 밝히는 박경석 대표의 발언을 들으며 다시금 힘을 얻었다. 평등한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들과 14년간 논의가 미루어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뜻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차별 행위를 즉각 시정하는 것은 물론,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싶기 때문이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인간 보편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