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운 좋게도 비거니즘을 실천하거나 지향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 중에는 요일 하나를 정해서 채식을 실천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와 종종 점심을 같이 먹으며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채식으로 먹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걸 느꼈다. 하루는 친구가 밖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도 기본으로 고기가 들어가는 식당이 많아 김치찌개를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의 얘길 듣고 아, 김치찌개에도 고기가 들어갔었지, 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김치찌개가 비건이 아니라는 것이 생경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김치찌개에도 항상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 그 사실이 특별히 어색하게 느껴진 건 내가 고기를 쓴 김치찌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 것 같았다. 김치찌개가 당연히 비건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 고기뿐만 아니라 젓갈 등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동물성 재료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게 찌개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나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때의 일은 내가 동물성 재료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또 식당에서 요리할 때 동물성 재료가 얼마나 많이 쓰이는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사실 집에서 무언가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최소 하루 한두 끼 정도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을 때만큼은 채식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레시피를 찾아보면 채소가 메인인 요리에도 논비건 재료가 종종 들어간다. 작게는 굴 소스 같은 양념부터, 크게는 참치 캔이나 계란 같은 재료가 주로 쓰인다. 무 조림에 굴 소스가 들어가거나, 양배추 덮밥에 참치 캔과 계란이 추가되거나 하는 식이다. 그래서 레시피를 찾을 때에도 메뉴 이름 앞에 꼭 ‘비건’을 넣어 검색하는 편이다. 그렇게 찾은 비건 레시피 중에서도 ‘초식마녀’님의 레시피는 정말 쉽고 간단해서 애용하고 있다. ‘초식마녀 Tasty Vegan Life’ 유튜브 채널에도 2~3분 남짓한 레시피 영상이 여러 편 올라와 있을 정도로 요리 과정이 짧아 누구나 시도해 볼 수 있다.
초식마녀님의 이번 책 《비건한 미식가》에도 저자만의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레시피가 여러 편 실렸다. 다만 이 책은 단순히 요리법만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요리와 관련된 저자의 에피소드나 생각이 들어간 에세이가 함께 실렸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에 실린 레시피는 저자의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각 레시피의 앞쪽마다 실린 저자 에세이는 영상에 드러나지 않은 저자의 생각이나 카메라 너머의 일상을 담고 있어 저자 유튜브 채널에서 꾸준히 레시피 영상을 시청하는 구독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저자의 손 그림으로 그려진 레시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저자가 혼자 해 먹은 음식을 다룬 1부나 다른 사람과 같이 먹은 음식이 담긴 2부에서는 저자와 주변인의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담긴 에세이가 주를 이뤘다면, ‘모두가 환대받는 식탁’이란 제목의 3부에는 비거니즘에 대한 메시지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 에세이가 담겼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1, 2부의 내용에서 더 나아가 3부에서 다루는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와 육식을 부추기는 사회의 모습, 우리가 먹는 음식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을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마지막 장에 담긴 강한 메시지 역시 이 책을 단순 요리책과는 다른 책으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간단하고 쉬운 레시피와 비건으로서 느낀 고민이 담긴 이 책은 이미 비건인 사람부터 비건 지향인, 이제 막 채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권할 만하다. 채식하는 내가 민폐 끼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게 싫어서 불편을 감수하다 보니 육식주의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부채감이 쌓였다는 이야기나, 논비건 음식을 대접한 카페 사장님의 진심을 환대할 수 없었던 일이 고독하게 느껴졌다는 저자의 말은 비건이나 비건 지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비건으로서 먼저 고민한 지점과 그에 대해 내린 자기 나름의 답은 채식을 처음 실천해 보려는 사람에게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선배 비건의 조언이나 간단한 비건 레시피가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