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내각제가 온다』는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하는 의원내각제 개헌론이다. 헌법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닌 사회학자가 왜 의원내각제 개헌론에 대한 책을 저술했을까?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은 이미 오래된 문제이다. 사회 갈등에 대한 원인과 답을 모색하는 것은 사회학자의 일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이 문제와 오랫동안 씨름해오면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권력 구조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내의 갈등과 대립의 주요 원인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 성차별, 세대 차이, 남북 분단 등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이런저런 개선의 노력도 이뤄졌지만 권력 구조라는 정치적 환경에 내재된 문제는 다른 원인들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사회 갈등은 권력 구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원내각제의 전환을 주장한다.
사회학자로서 저자는 그간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으며 이전 저술 『연대주의』(2012)에서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가 사회적 연대와 협력에 더욱 친화적인 정부형태임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책은 앞으로 한국 정치와 정부형태가 가야 할 방향으로써의 의원내각제를 제안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원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앞당기고 싶다고 밝힌다.
저자는 본문을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부분인 2장과 3장에서는 사회학자로서 저자가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 사회가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연대·협력형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는 의원내각제로의 정부형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부분인 4장에서 8장까지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에 대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인 9장과 10장에서는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을 위한 저자의 개헌 구상을 다룬다.
의원내각제란 무엇인가
의원내각제란 대통령제와 대조되는 정부형태로서 국가수반인 대통령과 정부수반인 총리가 분리되어 있다. 총리 혹은 내각은 의회에서 선출되고 신임을 받아야 유지된다. 반면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국가수반과 정부수반을 겸임하며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대통령제는 입법부, 즉 의회와 분리되어 있어서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독립된 권한을 행사한다.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의 요소도 섞여 있는 혼합형 체제도 있다. 이 체제에서 대통령은 보통 외교 및 국방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총리는 내정 권한을 가진다. 그래서 이 정부형태를 이원정부제 또는 이원 집정부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총리는 의회의 신임이 필요하다.
의원내각제는 영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여 발달했는데, 영국의 1215년 마그나카르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귀족들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제한하고 귀족들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려 했다. 이후 중세 말 시민계급의 성장은 이를 더욱 촉진시켰고, 17세기 말 청교도혁명과 특히 명예혁명은 왕권의 제한과 의회의 권한 강화의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18세기 초 내각이 의회에 책임을 지는 내각책임제가 등장하여 의원내각제가 자리를 잡아갔고, 서유럽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으로도 점차 확산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으로도 확산되었고 오늘날에는 의원내각제가 전 세계의 가장 대표적인 정부형태 혹은 정치체제이다.
한편 한국에도 의원내각제의 아주 짧은 경험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제2공화국에서 약 1년 정도 의원내각제를 경험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다수 주역들은 의원내각제나 혼합형 정부형태를 바랐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승만이 대통령제를 밀어붙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리 사회는 제2공화국 시절의 혼란스러운 기억으로 인해 의원내각제는 정치적 불안정을 낳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서유럽 국가에서 의원내각제가 가질 수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로 건설적 불신임, 봉쇄조항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서 성숙을 거쳤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의 연대협력형 선진 민주주의 사회가 증명하듯 협력과 협치를 통해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치 체제로 증명되었다.
연대형 사회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정치체제로서의 의원내각제
서울대학교 이재열 연구팀은 세계가치조사(WVS), 유럽가치조사(EVS), 지니계수 등 1999-2012년 시기의 자료를 활용하여 83개국 갈등 지수와 80개국 사회통합 역량 지수를 산정한 후 이를 바탕으로 79개국의 사회통합 지수를 산정했다. 저자는 사회통합 지수 가운데 최상위 10개국을 '연대형 사회'라고 부른 바 있다.
연구팀에 제시한 10대 사회통합형 국가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인데, 이 국가들은 16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민주주의 지수 최상위 10개국에도 모두 들어있다. 종합하면 연대협력형 사회는 사회적 약자 집단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통합에 성공한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은 사회통합 수준이 79개국 중 가운데 40위이며 사회갈등 수준은 갈등 지수 58위로 83개국 중 가운데로 26번째로 높다. 즉 한국 사회는 높은 갈등 수준과 낮은 통합 수준이며 다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저자는 왜 최고 수준의 연대협력형 사회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일까? 바로 이들 국가의 정부형태와 혼합형인 스위스를 제외하고 모두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국의 경제적, 사회적 평등 및 복지의 수준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측정 방법들인 지니계수, GDP 대비 공공사회 지출 비율, 성불평등 지수, 사회 진보 지수, 민주주의 지수, 국가 행복도, 국내 총생산을 비교하여 <선진사회의 지수와 순위>를 표로 정리한다. 이 표에서 보여주는 것은 세계 최고의 선진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대통령제를 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저는 이를 통해 대표적인 선진사회는 의원내각제가 일반적인 정부형태이며, 정치적, 사회경제적, 환경적인 선진사회에서는 대통령제가 매우 드문 정부형태임을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일반적인 대통령제 정부형태의
예외적인 현상일까?
저자는 정치체제로서의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대통령제와의 비교를 선택한다. 특히 정부형태로써 대통령제 보여주는 한계점들이 몇몇 나라에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임을 설명한다. 불과 몇 주 전 대선을 치른 나라에 사는 국민답게 나 역시 대통령제의 한계와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대해 온갖 매체를 통해 아주 충분히 들었다.
저자는 대통령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으로 후앙 린츠의 분석을 소개한다. 린츠에 따르면 대통령제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특징으로는 이원적인 민주적 정당성과 경직성을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인지 가능성과, 책임성, 중임 제한, 대통령직의 모호성, 국외자의 당선 가능성, 위임제 민주주의 등의 특징을 가진다.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자신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제』(1973)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대통령이 매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되, 의회나 사법부로부터 효과적인 견제를 받지 않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닉슨 전 대통령,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등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표적 사례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징으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대통령의 강력하고 광범위한 행정권력, 입법부와 사법부의 약한 견제 기능으로 인한 대통령 권력 집중,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의 집권 남용, 부정부패, 정적 탄압 등의 만연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대통령이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포퓰리즘과 결합하려는 경향이 있고, 정책 실패의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정치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는 주로 권력 집중 및 권력 견제 실패와 관련된 여러 특징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대통령제에 내재된 위험요소라는 논지를 지속적으로 펼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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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이 출간된 시기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2024년 말 12.3 비상계엄을 온몸으로 겪어낸 우리 국민에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바라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었다. 또 여느 때처럼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이 이런저런 매체에서 확인된다. 이 책은 4년 중임제 대통령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의원내각제로 정치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명확한 비전과 함께 개헌안까지 제시한다. 때마침 나는 미디어에서 인물 중심으로 정치 해설을 하는데 다소 지쳐 있었다.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수박겉핣기식으로 언급만하고 지나가는 정치체제 로써의 대통령제의 한계에 대해 정리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요없다를 이 책 한 권만 읽고 결정하거나 깊은 식견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제의 한계에 내재된 불안요소를 좀 더 정돈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때때로 온갖 매체가 정치 뉴스를 마치 연예 뉴스나 스포츠 뉴스처럼 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책은 이것조차 인물 중심 정치의 대통령제의 특징에서 비롯함을 알려준다. 대통령제에 내재한 근본적인 한계가 무엇인지 잘 정리하여 알려주는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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