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자유』는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쓴 디지털 변화의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책으로 노동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샤낭꾼, 목동 비평가』,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에 이어 그의 미래 3부작을 완성하는 책으로, 지금 우리는 단순히 기술 진보를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전환기에 있다고 말한다.
산업혁명 이래 지난 200여 년 넘게 지속되었던 생업 노동 사회가 거의 끝나 가고 있으며, 진보나 번영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알았던 노동 개념을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더 많은 경제적 번영을 이뤄 내야하고 무조건 더 많이 가져야 하는가? 왜 우리 사회는 사치스러운 물질적 욕구를 계속 자극하는 것일까? 이미 우리는 충분한 물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행복은 최신형 핸드폰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충분히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 물질을 더 얻기 위해 지금처럼 오래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목적을 찾고 싶어 한다. 우리는 노동과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한편 많은 사람이 일을 적게 하고 스스로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을 허용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상태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그간 신성시해왔던 노동의 가치를 재검토한다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가진 낡고 세뇌된 노동에 관한 상식을 뒤집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문제는 새출발이나 변혁 같은 거창한 말을 뒷받침할 만한 거대한 이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 사회적, 경제적 창의성과 진정한 변화를 위한 용기 없이는 미래의 분배 투쟁, 민족주의의 득세, 학살과 전쟁 같은 두려운 시나리오를 막기 힘들다. (...)
모든 산업 혁명이 그랬듯이 가장 큰 도전은 완전히 다른 데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제2차 기계 시대의 도래와 일의 미래
저자가 진단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무너져 가는 세상과 승승장구하는 새로운 것의 행렬에 직면해"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노동 사회는 거의 끝나간다. 저자는 노동 사회를 제1차 기계 시대와 제2차 기계 시대로 구분한다. 산업혁명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대가 제1차 기계 시대였다면 인공지능이 이끄는 디지털 혁명은 제2차 기계 시대를 열어젖혔다.
제2차 기계 시대의 본격적인 전개를 앞두고 각종 전문가들은 온갖 예측을 내놓는다. 이 예측은 주로 디스토피아적인데 비숙련 노동자들은 퇴출되고 강등될 것이라 한다. 빈부 격차는 더욱 증거할 것이다. 독일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산업국에서 노동자들이 사회적 추락을 겪게 되고 사회 시스템의 붕괴가 예상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해있고 이것은 선진국의 우익 포퓰리즘의 준동과 연관된다. 사회적 패자들은 자신들의 공공의 적으로 로봇이나 AI 시스템을 지목하는 대신 피부색과 출신 배경으로 적을 골라낸다. 혐오와 차별 분노가 사회에 넘실거린다.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이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일자리 손실을 만회하고 사회에 필요한 노동자들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의 노동자들을 열심히 재교육시켜야 할까? 한편 디지털 혁명을 겪고 있는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이 너무 빈곤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제2차 기계 시대에서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보다 앞서 '노동 개념' 자체를 다시 돌아보라고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웬만하면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저자는 우리가 가진 '노동'이 얼마나 이상한 개념인지 깨닫게 만든다.
생업을 위한
노동이 필요 없는 시대가 왔지만...
저자는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노동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왜냐면 노동 개념은 인간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변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노동의 개념은 근대 이후에 굳어진 것이다. 18세기에 서서히 자리를 잡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체계가 잡힌 노동 개념이 오늘날까지 지속된다. 이 체계에서 신이나 자연이 아닌 노동이야말로 인간에게 각자 자리를 지정해 준다. 우리의 권리는 노동에서 성취한 것에서 비롯한다. 물론 물려받은 부모니 조상의 노동에서 얻어 낸 성취도 존재한다.
이 체계에서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무언가를 성취하고, 더불어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다. 또 소비 종교가 전 지구를 휩쓸면서 노동자는 물질을 구입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동기가 더욱 뚜렷해졌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지위와 계급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욕망하고 소유하길 꿈꾼다. 우리는 삶에서 노동이 늘 중심이며 여가 시간은 노동 시간의 보충물 정도로 취급한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에서도 미래에 대한 가장 큰 불안은 대량의 실업상태이며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청사진은 '완전 고용'의 상태이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노동' 개념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하고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제2차 기계 시대를 앞두고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려 노력한다.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의 욕구도 바뀌었다.
한편 우리의 사회는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모른다. 그냥 모르는 무지의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는데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욱 나태해지지 않을까?
21세기에는 사람들의 주요 욕구가 달라졌다. 많은 경우에 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이런 욕구가 실현된다. 틀에 박힌 협소한 직업 세계나 노동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노동 세계 바깥에서 대부분의 욕구가 충족된다.
무조건적 기본 소득
저자는 노동 개념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우리가 가진 '노동'의 개념이 얼마나 기독교적이고 근대적이며 일시적인 것을 깨닫게 만든다. 우리가 제2차 기계 시대에 걸맞은 노동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뒤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저자는 '의미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인류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노동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1970년대 이후 정보 기계의 혁명으로 의미 사회가 탄생했는데, 예전의 노동 사회가 임금 노동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의미를 중심으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2차 기계 시대가 단순히 노동 사회의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경제적, 사회적 운영 체제의 변경이다. 의미 사회에서는 기존의 노동 사회와 달리 게으름을 반드시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질적 성공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한편 사람들이 자기 노동력의 분배를 통해 자유롭게 의미를 생산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21세기형 의미 사회로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연금 제도와 같은 낡은 아이디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이다.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몇십 년에 불과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2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민 수당>, <최저 생계비 보장>, <토지 배당>, <사회 배당>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무조건적 기본 소득', '기본 소득 보장', '보편적 기본 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아이디어다.
저자는 생산력도 충분하며 경제적으로도 가능한 지금의 사회가 '의미 사회의 자유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조건적 기본 소득의 개념을 적극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무조건적 기본 소득이라는 오래된 아이디어의 전개를 정리하여 제시하고, 이 개념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허술한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기본 소득'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질문들 '부자에게도 기본 소득을 제공하라고?', '아니 돈은 누구보고 내라고?' 등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답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 소득에 대한 수많은 모델 실험이 훨씬 작은 목표를 설정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들이 집중하는 문제는 대체로 단 하나의 질 문 세트이다. 앞서 이미 상세히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다시 반복하면 이렇다.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사람을 더 게으르게 만들까, 더 부지런하게 만들까? 사람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변할까, 미성숙해질까?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설계해 나갈까, 아니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몰라 허우적거릴까? 코브케가 명확히 지적했듯이, 이 질문들은 그 자체로 이미 우리의 자유주의적 자아상에 대한 공격이다. 왜냐하면 <자유 민주주의에서 기본 소득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정치 공동체가 이미 전제하고 있는 사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시민들은 각자 자기 주도적으로 삶의 결정을 내리고, 공동체 문제에 대해 서로 합리적으로 조율할 뜻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증기 기관과 방적기, 전기화, 전자 제품의 발명으로 일자리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오히려 매번 늘었다. 저자는 비관론자는 늘 틀렸고 신중한 사람들이 항상 맞았다고 말한다. 디지털 혁명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불안은 반자동적인 반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은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우리의 불안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이럴 때 사상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상가'란 낯설고 '리더'라는 사람들은 좀 더 친숙하게 들린다. 이들의 역할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기존의 관념이 얼마나 낡은 것인지 깨부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신중한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아이디어를 일깨우기 위한 책이다. 생업 중심의 노동 사회가 거의 저물었으며 의미 사회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히트의 책이 두꺼운 이유는 무조건적 기본 소득의 개념이 허황된 개념이 아니라 2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노동 개념이 그만큼 세뇌되어 있기에 이것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설명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 시대의 사상가 프레히트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난해한 언어가 아니라 현실에 단단히 기반을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