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낙원』의 저자 김상균은 인지 과학자이자 경희대 교수로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의 주제로 활발한 저작 활동과 대중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인지과학과 산업공학, 로보틱스 등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강단의 교수가 쓴 SF 소설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김상균 교수의 『기억의 낙원』은 인간의 의식과 인지능력을 조작해 주는 상품을 판매하는 '더 컴퍼니'라는 회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소설이다. 삶이 주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컴퍼니를 찾는다. 예를 들면 평생을 무능력한 남편과 성인으로서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으나 병을 얻어 시한부가 되어버린 아내를 위해 남자는 더 컴퍼니를 찾는다. 남자는 아내가 행복한 기억을 안은 채 삶을 마감하기를 바란다. 더 컴퍼니는 돈을 받고 남자의 아내에게 조작된 것을 주입하고 안락사로 이승에서 삶을 종결한다. 그리고 어떤 부모는 자녀가 의사가 되길 원하는 욕심으로 별다른 꿈이 없는 자녀에게 스스로 의사가 되길 원한다는 가짜 의지를 주입하려 한다. 한 의뢰인은 자기 가족의 행복을 망가 뜨린 작은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를 하려 한다. 한편 더 컴퍼니는 고객이 요청한 서비스에 얽힌 윤리적 도덕적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에 관여하지 않는다. 판단과 선택은 오로지 고객의 몫이다. 『기억의 낙원』 소설의 주인공이자 더 컴퍼니에 취업한 하람을 통해 소설의 초반부터 독자에게 더 컴퍼니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얽힌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하람의 옛 연인이자 신문기자인 소이를 등장시켜 더 컴퍼니가 판매하는 서비스를 추적하면서 소설에 서스펜스를 더한다.
이번 책이 내게 준 재미는 인지과학과 뇌과학 지식들이 소설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사피엔스가 가진 뇌의 생물학적 사회적 특징을 분석한 대중 교양 과학서들이 많이 나와있다. '작화증', '브로카 영역' 등 뇌과학 분야의 흥미로운 발견들이 『기억의 낙원』의 소재가 된다. 사피엔스의 뇌는 진짜로 겪은 것과 상상한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한부 아내의 마지막 길에 조작된 행복 기억을 주입한다. 또 사피엔스의 뇌는 영혼이 깃들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허파나 간처럼 인체의 장기이다. 이 책의 도입부에 소설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장교수가 사랑하는 아내의 뇌를 분리하는 실험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그간 내가 읽어온 논픽션 글들이 픽션으로 탈바꿈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만약 이 책이 영화화되어 시각적으로 펼쳐진다면 어떨까 상상했다(참고로 사피엔스의 뇌는 영상을 볼 때는 주로 시각적 영역이 활성화되지만 문자로 읽을 때는 뇌 전반의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니 이 소설은 신뢰가 가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그럴듯한 이야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