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어른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부모님의 기대나 학교의 규칙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한 살 한 살 차곡차곡 나이가 들어 어느새 삼십 대 후반이 되고 보니, 어른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지만 여전히 못하는 일도 있고, 할 수 있지만 부러 안 하는 일도 있다. 그렇게 체념과 포기를 학습하면서 점점 더 무기력하고 우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어른의 삶인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베스트셀러 <곰탕>의 작가 김영탁의 신작 장편소설 <영수와 0수>의 주인공 '영수'가 딱 그런 상태다. 바이러스와 에이아이(AI)로 인해 개인 간 거리 두기가 당연시 되고 인간의 노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시대.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누군가 자살할 경우 가장 가까운 가족 세 명이 죗값으로 추가 노동을 하는 연좌제 페널티를 마련한다. 영수의 경우 아버지가 자살을 해서 강제로 주 6일 근무를 해야 한다. 영수는 오래 전부터 죽고 싶었지만 자신마저 죽으면 혼자 남은 엄마가 주 7일 근무를 해야 하게 되는 것이 미안해 자살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수는 직장 동료 '오한'으로부터 매혹적인 제안을 받는다. 영수와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을 구입해 그에게 영수 대신 노동을 하게 하고 영수는 남몰래 자살을 하라는 것이다. 자신은 자살이라는 꿈을 이뤄서 좋고, 엄마는 주7일 노동을 안 해도 되니 좋다고 판단한 영수는 복제인간을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복제인간이 자기 대신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자기를 닮은 '0수'가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영수보다 먼저 '0수'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영수의 계획에 지장이 생긴다.
이 소설은 복제인간, 기억 매매 등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기술이 가능해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에이아이 등 최근까지 큰 문제였거나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전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느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법을 잊어서, 살고 싶은 마음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비현실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이 책을 읽고 영수처럼 자기 몫의 노동을 대신 해줄 0수 같은 존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초반부터 자살, 연좌제 페널티, 복제인간 등 삭막한 단어들이 줄줄이 나오는 이 소설이 돌연 따뜻한 분위기를 띠는 대목이 있다. 자살 시도에 실패한 0수를 집으로 데려온 영수가 직접 요리를 해서 밥을 먹이는 장면이다. 평소에는 귀찮다는 이유로 냉동 음식만 먹던 영수가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드는 장면, 잘 먹는 0수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흐뭇한 기분을 느끼는 장면을 보면서, 남이 나에게 잘해줄 때 느끼는 기쁨도 있지만 내가 남에게 잘해줄 때 느끼는 기쁨 또한 나를 살게 하고 더 잘 살고 싶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영수가 잘해주는 대상이 영수 자신의 복제인간인 0수인 점도 흥미롭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라, 배려하라는 말은 많이 듣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 잘해라, 배려하라는 말은 안 듣는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나'라는 존재가 평생 함께 지내야 하고, 누구보다 잘 이해해야 하는 대상인데 말이다. 영수의 삶이 단조롭고 지루했던 이유가 '기억'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대목들도 좋았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삶 또는 기억하지 않기로 택한 삶이 어쩌면 우리를 체념과 포기에 적응한 어른, 무기력하고 우울한 어른으로 만드는 원흉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