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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4일

제목: 유리알 유희가 깨지는 순간


최근 한국 대학은 ‘AI 컨닝’이라는 이름의 소동으로 술렁이고 있다. 명문대라 부르던 곳들마저 급히 금지령을 내리고, 시험 무효를 선언하며, 학생들을 단속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건을 보며 전혀 다른 풍경을 떠올렸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완벽해 보였던 결정체가 빛 아래 놓이는 순간 금이 간다. 투명한 구슬로 우주를 환원하고, 모든 지식을 정제해 ‘완전한 체계’라 믿었던 카스텔리안의 세계처럼, 한국 대학 교육 역시 AI라는 빛을 쬐는 순간 그 화려한 표면이 무너져 내렸다.

이 논란은 학생의 부정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가 쌓아 올린 지식의 유희(遊戱)가 이제 유효하지 않다는 증거다.


왜 AI가 등장한 순간 대학 시험이 붕괴했는가?
많은 대학 시험은 여전히 이렇게 구성될 것이다.  강의 내용을 외워 적기, PPT 요약, 개념 재현 같은 이런 평가는 AI에게 아주 취약하다. 

대학이 신뢰해온 암기형 평가 구조는 AI 앞에서 유리알 처럼 깨졌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시험 그 자체다.


따라서  AI 금지령은  사실 ‘대학 교육의 파산’을 감추는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AI 금지령은 사실상 “우리 시험은 AI 등장 이후 의미가 없다” 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금지가 아니라 시험 설계를 새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교수들은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유리알 유희>의 카스텔리안처럼 우리의 대학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삶과 유리된 지적 유회에만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점을 간파한 유리알 명인 크네히트는 결국 카스텔리안을 떠났다. 대학의 유리알 유희는 이제 깨졌다.


그렇다면 대학이 다시 질문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AI 시대의 교육은 기억이 아니라 사고·판단·설계 능력을 묻는다. 

AI 오류를 찾고, 모델을 선택하고, 인간만이 수행해야 할 결정을 내리는 능력. 

이제는 ‘정제된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그릴 힘’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교수들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이번 논란은 학생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교수의 시대적 적응 문제다. 

지식 체계는 깨졌고, 교수들은 AI와 함께 새로운 질문을 구성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자, 이제 드디어 유리알이 깨졌다면 새로운 게임을 만들 때다.
AI 컨닝 논란은 대학 시험 구조가 AI 시대를 견디지 못했다는 선언이다. 

유리알이 깨졌다면 파편을 탓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적 판을 설계해야 한다. 

AI는 대학의 적이 아니라 대학이 본래 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촉매제다.

앞으로 대학은 AI를 금지하는 곳이 아니라,  AI 너머의 사고를 만들어내는 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시대의 카스텔리안은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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