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보이차 한잔

관노트: 8월 27일

글 제목:  어린 왕자에서 은하 철도 999, 그리고 화엄경까지


어제 블로그 이웃 이신 잉크냄새님의 어린 왕자의 사투리 버전에 대한 리뷰를 읽다가 문득 어린 왕자의 여우가 떠올랐다.

여우는 지구 별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함을 알려준 스승과 같은 존재다. 만약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어린 왕자는 장미에게 지녔던 감정이 사랑 이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사유해 보다가 어린 왕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깨달음을 얻는 구도의 여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화엄경과 연결되었다.

화엄경은 불교 경전 가운데서도 ‘경전의 왕’ 이라 불린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인연에 의해 서로 얽히고 기대며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마지막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53명의 스승을 찾아다니며 무지와 집착을 버리고, 보현보살에게서 깨달음은 지혜로만 끝나지 않고 자비로 완성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어린 왕자는 단순하게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별에서 만난 왕, 허영심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등불지기, 지리학자는 모두 인간의 집착과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선재동자가 길 위에서 만난 선지식처럼, 어린 왕자도 이 만남을 통해 깨달음의 단계를 밟아간다. 

특히 어린 왕자가 만났던 왕의 모습에서 이제는 콜드플레이의 노래 Viva La Vida 멜로디가 떠오른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지만, 지금은 성벽은 무너지고 나는 홀로 서 있다.” 

멜로디는 경쾌하지만, 그 안에는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지 담겨 있다.

권력은 실체 없는 그림자이고, 무너지는 순간 비극은 오히려 울림으로 변한다. 


마침내 지구별에서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났을 때 그는 알게 된다. 

“네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네가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와 책임, 시간과 정성 속에서 특별해지는 것이다.

여우는 화엄경의 보현 보살과도 같다. 보현보살은 자비의 상징이며 사실 지혜와 자비는 불교의 깨달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어린 왕자는 뱀에게 물려 육체의 껍데기를 벗는다. 

“내 몸은 너무 무겁다. 껍데기일 뿐이야.” 

어린 왕자에서 뱀은 허물을 벗는 상징이자 이 장면은 불교의 무아와 겹친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우리의 육신도 그저 허물을 벗는 것이다. 육체는 껍데기일 뿐이고, 본질은 그 너머에 있다.


이 장면에서는 은하철도 999가 떠오른다. 만화에서는 철이와 메텔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주를 여행한다. 하지만 여정의 끝에서 철이는 깨닫는다. 영원한 육체, 기계의 몸은 인간다움이 사라진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육체의 무거운 껍질을 벗는 장면과 맞닿아 있다. 영원을 얻겠다는 욕망은 결국 참된 인간임을 포기하는 길이었다. 


이처럼 어린 왕자와 Viva La Vida 그리고 은하철도 999까지.

서로 다른 언어와 시대, 장르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원과 권력, 육체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상 속에서 자비와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화엄경은 동화 속에도, 음악 속에도, 만화 속에도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화엄 세상이다.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읽고, 듣고, 감동한 이야기 속에 이미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방대한 화엄경의 정수를 짧게 응축해 놓은 것을   법성계(法性偈)라 한다. 그 법성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시고행자환본제, 파식망상필부득(是故行者還本際, 罷息妄想必不得)

이런 고로 수행자는 근본으로 돌아가되, 망상심을 쉬지 않으면 얻을 것이 하나도 없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대상을 분별하지 않을 때 비로소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제 어린 왕자는 화엄경의 선재 동자와 같은 수행자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왕자가 걸어간 여정은 곧 우리 모두의 여정이다. 


결국, 우리 모두 다 어린 왕자다. 



🖋 Dharma & Maheal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