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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이호
  • 13,000원 (650)
  • 2024-12-23
  • : 2,326



 책의 도입부에 소개된 은사 양반과 장인어른이 했다는 거 "미친놈 다 보겠네"라는 말이 불광불급이란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는데 솔직히 그 정돈가 싶었다. 도입부부터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첫번째 일화인 이철규 의사의 부검 관련 일화를 읽으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이철규 의사의 부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저자는 본인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 시절을 자랑스레 언급한다.


시절이 엄혹하던 1980년대 후반 나는 의대 학부생이었고, 학생운동을 하느라 수업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세상이 망가져가는데 수업을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의대는 한 과목만 F를 받아도 유급이다. 나는 보나마나 유급이었고, 유급을 당했다는 소식도 임실 농민 집회 현장에서 들었다.


 리뷰를 위해 본문을 잠시 옮겨보자면

물 위에 떠 있었던 그의 얼굴은 왼쪽 안구가 돌출된 채 새까맣게 변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상해 있었고, 온몸에 피멍이 들고 오른쪽 어깨는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것은 분명 고문 치사임에 틀림없다. 경찰이 고문하다 이철규가 사망하자 그의 시신을 수원지에 버리고 익사로 은폐하려 한다. 학생들은, 우리들은 그렇게 믿었다. 확신했다. 이철규의 시신을 경찰에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몇 시간 동안 그의 시신을 에워싸고 지켰다. 그러나 결국 시신은 경찰에 넘어갔고, 국과수에서 부검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흘 뒤, 부검 결과가 발표되었다.


“부패 불명이나 익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믿기지 않았다. 시신 발견 일주일 전인 5월 3일, 이철규는 오후 4시경에 지인과 짜장면을 먹은 후 자리를 옮겨 다른 친구들과 카페에서 주스를 마시고는 오후 10시경에 일어났다. 수원지 근처 산장에서 약속이 있다며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기사에 따르면 수원지 입구에서 경찰 검문을 받다가 이철규가 수원지 쪽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그리고 종적을 감췄다.


학생들은 말끔했던 그가 전신에 피멍이 든 채 발견된 점, 그리고 부검 결과 그의 위 속에서 콩나물과 시금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철규를 마지막으로 만난 이들이 그가 먹었다고 증언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점 등의 정황으로 볼 때, 그는 고문 끝에 사망해 수원지에 유기되었음이 확실하다고 의심했다. ‘익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달리 말하면 ‘익사했을 수도 있다’는 국과수의 부검 소견은 그래서 분노를 자아냈다.


나 역시 분노한 학생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철규의 부검을 진행했던 국과수 법의학자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전화번호까지 알아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원태.’ 그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이태원을 거꾸로 하면 이원태’ 하고 외우기까지 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종종 국과수에 전화를 걸어 그 이름을 찾으며 욕을 퍼붓고 끊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부검 결과를 거짓으로 발표한 잘못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저자는 군입대를 하고 공중보건의로 국과수 서부분소에 발령되어 이원태를 만나게 된다. 찾아보니 국과수소장으로 2008년 퇴임한 이원태는 당시 그의 선임이 아니라 상관(소장)이었다.

“실은 이철규 사건을 계기로 법의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흘러오다 보니 이렇게 제가 소장님을 모시고 국과수에서 근무를 하고 있네요. 이것도 운명 같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써야할까 아니면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을 써야할까?

 학생들이 이철규 열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시신을 한동안 상온에 두었던 까닭에 부패가 더욱 심하게 진행되어버렸다. 하필 날씨도 푸근한 5월이었기에, 국과수에서 부검을 진행할 무렵에는 시신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았다. 학생들이 고문의 흔적이라고 생각한 온몸의 멍자국은, 부패했을 때의 피부 변색 역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꼭 멍처럼 시커멓게 보이기에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부패 불명’이라고만 발표했더라면 서로의 불신이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익사의 가능성’이라는 문구 때문에 학생들이 외압을 더욱 의심했던 것이니 말이다. 그것에 대해 이원태 선생님은 이철규 시신의 바지가 걷어 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강을 건너려고 바지를 걷었고, 그러다 실수로 물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훗날 알고 보니 바지를 걷어 올린 것은 이철규 열사 본인이 아닌, 시신을 지키던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신의 멍자국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바지를 걷어 올려두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철규 열사의 바지는 걷어 올려지지 않았고, 그가 강을 건너려고 했는지 아닌지는 이제 아무도 알 길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던 불신의 시대에 벌어진 비극이다. 물론 이철규 사건에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증언과 맞지 않는 위 속 내용물, 경찰 검문 과정에서 도주하다 사라진 점 등 밝혀내지 못한 의문은 영원히 어둠 속에 있다.

시신의 인계과정을 비롯한 제반사항을 전혀 고려하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걷어 올려진 시신의 복장만으로 익사의 가능성 운운한 것 자체가 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걷어올려진 바짓단으로 익사 가능성을 운운하는게 법의학인가? 그런 정황은 경찰의 초동수사로나 나올만한 내용이 아닌가? 우리(일반 시민)이 법의학 부검과정에서 기대하는 것이 바짓단이 접혀있었기 때문에 익사 가능성이 있다는 시답잖은 내용인가?  저자도 그런 이원태의 판단에 납득하지 못했다는 것이 위속 내용물과 경찰 검문과정에서 도주 후 실종되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드러나지만 본인의 상관이자 지인이고 동업자이기에 감싸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술은 역겹게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운운하는 문장들이 특히 그러했다. 당장 떠오르는 사례만 해도 전두광의 쿠데타에 맞섰던 정병주 특전소장 의문사 사건과 장태완 수방사령관 장남의 의문사 사건이 있다. 그리고 다까기 마사오 시절의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 사건도 그러하다. 


 그러다보니 '모든 법의학자들은 월급이 적고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오려는 사람도 거의 없고 부모나 아내가 결사 반대하고...' 법의학자 말고 의사했으면 돈 많이 벌었을텐데하는 자조와 돈많이 달라는 시위처럼 삐딱하게 읽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같은 역겨운 문장만 없었다면 다르게 읽혔을 것 같다. 


 의사들의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의사들은 글을 잘 못 쓴다. 특히 자기들의 전공분야에 대한 논문이 아닌 일반 대중들을 겨냥해서 내놓는 인문학적인 책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오의 명상록이니 플루타르코스니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니를 암만 인용해도 비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같은 역겨운 문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나의 (생존자) 편향이겠지.


시절이 엄혹하던 1980년대 후반 나는 의대 학부생이었고, 학생운동을 하느라 수업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세상이 망가져가는데 수업을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의대는 한 과목만 F를 받아도 유급이다. 나는 보나마나 유급이었고, 유급을 당했다는 소식도 임실 농민 집회 현장에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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