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으로 접할 때는 크게 못 느꼈는데 텍스트로 옮겨놓고 보니 셀프 용비어천가식 치적 나열에 100세 철학자의 어쩌고 옆차기하는 책을 읽을 때처럼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진다. 나이든 교수들 특인가? 도킨스를 만났을때 에피소드에서는 도킨스 앞에서 거의 설설 기다시피 하다가 참참못하고 한 소리 결국 했다는 것이 뇌리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의예과 컨닝한 8명을 다음부터 잘하자며 봐준 에피소드처럼 중복되는 이야기도 몇몇 보이고. 생물종 전체의 무게(개체수 * 개체 평균 체중)를 기준으로 비중을 비교하는 방식도 자주 쓰이는데 이게 자주 쓰이는 방식인건지도 좀 의문이 들었다.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미생물은 개체수 곱하기 평균체중 암만 곱해도 비중이 높아질것 같지는 않은데. 이 책이 강의록이라 자주 쓰는 패턴이 있는거겠지만.
선진국이 자동차 타고 에어컨 펑펑 써서 가난한 나라가 물에 잠긴다 기후변화가 위험하다 안좋다는 수십 수백번 반복되는 소리도 그렇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자는건데?
선생님부터 자동차 타지 말고 비행기 타서 국가 순방부터 자제하고 강의실 및 교수실에 에어컨 켜지 말고 유튜브 서버랑 데이터 센터 그거 냉각시키는데도 에어컨 펑펑 틀텐데 유튜브 영상부터 올리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탄소 흡수해서 지구 온난화를 막는 나무를 지키기 위해선 펄프로 출간되고 있는 종이책 출판부터 줄여나가야 하지 않을까? 찾아보니 전자책이 온실가스 더 나온다는데 전자책도 줄여나가야겠다. 막이러고.
나는 교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내 역할이지 구체적인 해결책 제시보다는 생명 다양성이 중요하다 다양성을 지키자는 식의 공허한 외침과 태도는 농업혁명 당시 고대-원시인류가 우리는 지금 먹고 살아야겠다 이걸로 발생하는 문제는 후세인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라고 하는 것과 무슨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처장 학장 같은 딱갈이짓은 하기 싫어서 안한다 국가단제장은 내가 제안한거라 했다 나는 얌체다'라는 솔직한 문장 같은건 그나마 나았다. 미국식 글쓰기인가 이게.
얼마 전, 어느 신문사 기자가 저를 인터뷰하러 와서 참으로 민망하게도 제 인생을 쭉 훑어줬습니다. 말 그대로 물 건너 갔다던 동강댐 계획에 대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 호소하는 신문 기고문을 써서, 댐 건설을 삽질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백지화하는 데 성공하며, 졸지에 저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되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4대강 사업에 항거하다 온갖 불공정한 핍박을 당했습니다.
어쩌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도 가담해 헌법재판소까지 불려가 과학자의 의견을 변론했는데 한 달 만에 헌법 위헌 판정이 내려지며 저는 남성으로는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습니다.
2012년에는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초대되어 제돌이와 그의 친구 돌고래들을 무사히 고향 제주 바다로 돌려보냈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엄청난 반대에 휘말렸지만, 이는 결국 우리가 잡아 가뒀던 동물을 우리 손으로 정중하게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우리 역사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며 동물복지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서 국무총리와 함께 일상회복 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K-방역이 세계의 칭송을 얻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시면 제가 이 많은 사회 활동을 하느라 줄곧 학교 밖으로만 나돌았을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교수와 학자로서의 본분을 잊은 적이 결코 없습니다.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맞으며 이제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분야가 된 생태학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려고 국내 최초로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에코과학부’를 설립하기 위해 포근한 모교의 품을 떠나는 용단을 내려야 했고, 노1무현 정부를 설득해 동양 최대 규모의 생태학 연구소인 국립생태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 봉사했습니다.
한편 동물의 행동과 생태에 관한 제 본연 분야의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에 2019년 동물행동학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Animal Behavior』 출간 사사업에 Editor Chief로 추대되어 전 세계 동료 연구자 600여명을 이끌고 거의 3천 페이지에 달하는 백과사전을 펴냈습니다. 비록 작은 과학 분야이지만 동료 연구자들로부터 리더로 추대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가슴 뿌듯합니다.
저는 장 자리에 앉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대학에서 여러 번 학장, 처장, 이런 거 해보라고 하셨는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학장이나 처장은 허울만 좋지 따지고 보면 다른 교수님들이 연구 잘하고 교육 잘하게 전문 용어로 ‘따까리’를 하라는 거잖아요. 그걸 제가 왜 합니까? 그래서 요리조리 핑계 대며 한 번도 안 했어요. 사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직업 중에 하나가 평교수입니다. 그 좋은 직업을 구해놓고 제가 왜 남의 따까리 짓을 합니까? 그래서 그런 거 한 번도 안 하고 제 교육만 하고 제 연구만 하고 제 논문, 제 책만 쓰며, 혼자 잘 먹고 잘산 아주 대표 얌체입니다.
그런 제가 어쩌다가 공립기관을 한번 운영하게 된 겁니다. 이것도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환경부에서 국립생태원이라는 기관을 만들어놓고 저더러 초대 원장을 하라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참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걸 안 할 수가 없었던 게, 2008년에 제가 디자인을 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