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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띵의 서재
  • 말라리아를 퇴치한 투유유 이야기
  • 수 루
  • 9,900원 (10%550)
  • 2019-10-05
  • : 321

 

 

 훌륭한 사람들의 어린시절을 엿보면 대부분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던 분들이 많다. 이 책의 주인공 투유유 또한 어린시절부터 약초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에 진학해 약학과를 들어가 약초를 계속 연구한 것만 봐도 말이다. 이런 열정이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냑을 만들수 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투유유는 어린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보면 들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와 마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투유유는 할아버지가 짊어진 바구니에서 빨간 열매를 발견하고는 그 열매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짊어지고 온 약초들을 더 큰 바구니에 옮겨 놓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투유유를 불러 빨간 열매를 맛보게 해 준다. 또한 투유유를 할아버지 집 안까지 들어오게 한다. 집 안에는 큰 서랍장이 여러게 있었으며 그 서랍들 안에는 여러 약초들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의사 였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투유유에게 약초들이 아픈사람들을 고쳐주는 고마운 풀들임을 설명해 준다. 투유유는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처럼 되리라 다짐하게 된다.

 

 

 성장하여 대학에 진학한 투유유는 약학을 전공한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투유유는 약초들을 맛도보고 잘근잘근 씹어도보며 연구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와 70년대에 중국에 말라리아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다. 투유유는 말라리아 치료법을 찾기 위해 중국 남부 열대우림으로 간다. 그 곳에는 말라리아 병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치료약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투유유 연구팀은 1971년 10월 4일에 개똥쑥에서 추출물을 만들게 된다. 이 추출물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1972년 11월 8일 개똥쑥에서 추출한 아르테미시닌이 만들어 진다. 중국에서는 이 물질을 칭하오수라고 불렀다.

 

말라리아를 퇴치한 투유유 이야기

 

[말라리아를 정복하고 노벨 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 투유유]

 

 1930년에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난 투유유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첫 아시아 여성 과학자입니다. 투유유는 베이징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1955년에는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약초 연구와 함께 서양의학 연구를 하는 중국중의과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라리아 치료법을 찾기 위해 중국 정부가 2년 전에 시작한 비밀 연구 프로그램에 투유유가 배정된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투유유의 임무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연구를 시작할 즈음, 24만 개의 서로 다른 화합물을 이미 실험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투유유는 말라리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중국의 남쪽 지역으로 급히 보내졌습니다. 그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두 어린 딸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투유유가 훗날 밝혔듯이, 당시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 치명적인 질병의 치료제를 찾는 것이 그에게는 먼저였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투유유는 2천 개가 넘는 중국 전통 치료법을 연구했고, 실험실에서 350가지가 넘는 화합물을 실험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그는 학명 '아르테미시아 아누아'로 알려진 식물(개똥쑥)의 잎을 끓여 우려내는, 1500년도 더 된 치료법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 이 치료법은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투유유는 놀라운 직감을 발휘했습니다. 높은 끓는점이 식물의 활성 성분에 손상을 가져온다는 생각에 투유유는 낮은 온도에서 활성화되는 용제인 다이에틸 에테르를 이용해 약용 성분을 추출했습니다. 새로운 추출물을 쥐에게 실험해 본 투유유는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실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치료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한 번 투여하면 열이 몇 시간 안에 떨어졌습니다.

 

 투유유의 연구 결과는 1977년에 발표되었지만, 그 논문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난 뒤, 투유유의 연구를 축하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그를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성격과 그가 살았던 역사적 배경 등 때문에 투유유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투유유라는 이름은 2011년에 래스커 의학연구상이라는 중요한 과학상을 받으면서 비로소 학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5년, 투유유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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