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읽고보고듣고쓰고
어느덧 이 책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처음 밑줄친 두 문장은 소설 속에서 Q라고 지칭되는 93세에 사망한 재일 교포 일 세대 화가가 80세에 했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적은 것인데, Q 특유의 낙관적인 태도와 함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타이밍이라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점을 독자인 나로 하여금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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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해설에 나온 몇몇 용어들이 생소하게 느껴져서 인터넷에 검색해가며 읽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기도 했지만, 뭐 좋게 생각하자면 잘 몰랐던 말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이런 점은 비단 여기에 수록된 평론가님의 해설뿐만 아니라 작품을 쓰신 작가님의 작품 속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왔던 것이다. 내가 한국사람인데도 아직까지도 생소한 한국말이 결코 적지 않다는 걸 독서과정 중에 수도없이 겪다보니, 내가 진짜 한국사람 맞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국어도 점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 곁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평론가 분들의 해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확실히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과 깊이가 나같은 평범한 독자들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어떻게 이런 심오한 생각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같은 경우 어떤 책을 한 번 진하게 읽고 나면 진이 빠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만해서는 그 책을 다시 쳐다보고도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평론하시는 분들은 직업적인 특성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책을 일단 한 번 완독하는 것은 기본이고 작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더 잡아내기 위해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보시는 듯하다. 어쩌면 이러한 반복의 과정이 일반적인 나같은 독자들과 전문적인 평론을 업業으로 하시는 분들 간의 차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요. 나는 기대하고 있어요.- P293
그녀가 유일하게 길게 대답한 질문은 색채들에 관한 것이다. 노랑에 대해 그녀는 말한다.
노랑은 태양입니다. 아침이나 어스름 저녁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태양이에요. 신비도 그윽함도 벗어던져버린, 가장생생한 빛의 입자들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 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지려면…… 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 P293
저것은 빛인가. 저것은 아름다움인가, 생명인가. 다만 그렇게 나는 서 있다. 말없이.- P295
누구에게나 낙관과 재기가 넘치는 시절이 한 번쯤은 있다.
세계가 일사일언으로 가볍게 교환되고 넓어도 회색이 되지않는 시절, 그렇게, 사랑하기에 부적절하지 않은 한 시절이어쩌면 잠시 손바닥 위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연민이다.- P296
수난이 욕망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이들에게 가장 오래 동행이 되는 것이 연민이다.- P296
담대한 철학자들은 이성의 지도에 따르기만 한다면 연민은 불필요한 감정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그러나 실은 불필요함을 역설할 만큼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것이 연민임을 자백한 것과 다르지 않다.- P296
한번 붙들리면 가장 힘세게 잡아끄는 것이 연민이라는 것,- P296
물론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지나가지만 어떠한 고통도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인식조차 고통이 되는 현재도 있다. 이것은 페시미즘도 마조히즘도 윤리도 수난 주간도 아니다. 그저 이조차도 삶이 품고 있는 주름들의 켜가 불현듯 드러내는 민낯일 따름이다. 그러니 역설이겠으나, 어쩌면 매 순간이 이렇게 대단원일까.- P298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줄 안다는 망연한 자부심이 때로 우리의 음역과 시계(視界)를 얼마나 그르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를 수습하고 다시 귀를 기울이면 그제야 비로소 하나의 특수한 슬픔을 잘 품고 있는 경험 일반의 더께가 느껴진다. 이 음역과 시계는 연민과 슬픔을 도드라진 몸피로 지닌 이들에게 허용되는 것이지만 연민만을 지닌 이에게는 현상하지 않는다.- P299
파토스의 영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간섭들이 합류하여 영점에 수렴되는 상호보정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가장 평온한, 어쩌면 가장 위험한 어떤 응축과 확산의 임계점을 삶은 간섭들을 중계하며 운용한다.- P300
우리의 삶이 냉기로 파쇄되기보다 차갑게 끓는 임계점들의 연속이기 쉽다- P300
한강은 직접화법이나 드러난 기승전결대신 종종 이미지로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징으로 무거워지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방향에서 다시 삶의 겹과 무늬를 드러내 보이는 데 성공한다. 여러 작품에서 독자의 시계에 선뜻 들어차는 이미지를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P300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지에 붙들리는 이는 어떤 한계 지점부근에서 골몰하고 있는 이일 가능성이 높다.- P301
한 가설에 의하면, 지각 정보로부터 판단을 거쳐 구체적 실행에 옮겨지기까지의 0.5초 동안에, 판단과 실행 사이의,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경계에서 수도 없이 많은 결정과 번복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한 연구자는 그 0.5초에 가상계che virtual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쩌면 현실이 되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래한 현실이었을 수 있는 저 ‘가상의 현실‘은 ‘드러난manifest 현실‘보다 훨씬 더 웅숭깊은 것일지도 모른다.- P301
엄연한 것은 소름 돋도록 무섭다.- P301
엄연히 존재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의 연쇄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언제나 사후에만 그 전의 의미들까지도 수습이 되고 결정이 되는 사실관계의 수납과정- P301
결과를 알고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있는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통해 확인되는 차가운 사실관계들도 있기 마련이다. 전자는 헬라 비극 속 영웅의 것이지만 후자는 현대 소극의 빈번한 주제이다. 물론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를 묻고 싶으나 묻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들도 있다.- P302
이미지는 때로 상징이 되어 군림하기도 한다. 그때 이미지는 주제화된 문장들을 자동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처음의 자리에서 고집스럽게 번뜩이는 이미지들도 있기 마련이다.- P302
무엇이든 작은 것에까지 집중하고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을 북돋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P303
겹으로서 삶을 넓히고, 삶의 세목들, 그 세세히 작은 것들에까지 곁을 주어보는 마음을 북돋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P303
단편은 성냥 불꽃 같은 데가 있다.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본다.
그 순간들이 힘껏 내 등을 앞으로 떠밀어줬다.- P304
돌이킬 수 없이 배어든 정서들이 있다. 두텁디두텁게. 간절하게. 때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찌르듯 고통을 주며.-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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