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읽고보고듣고쓰고
이 책은 두 달 전에 초반부만 살짝 읽고 다른 책들을 읽느라 한동안 손놓고 있었는데 드디어 2달만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오늘 다시 읽기 시작한 부분은 ‘어둠의 사육제‘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 후반부인데,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자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영진이라는 인물이 예상치 못한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자신의 이모집에 얹혀 살다가 새로운 월세방을 구하려고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전에 읽었던 우여곡절의 스토리도 언급하면 좋겠지만 이래저래 복잡한 관계로 본의아니게 여기서는 별도로 적진 않겠다. 혹여나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약 2달 전에 이 책과 관련하여 올린 포스팅을 참조해주시면 좋겠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월세방을 구하기위해 발품을 팔던 영진의 머릿속이 이런저런 잡생각들로 인해 뭔가 복잡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베란다의 창살 앞에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몸뚱이를 기대어 서면, 저 불빛들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생각할 것을, 무엇인가를 꿈꿀 것을, 무엇인가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것을 나에게 강요하곤 했다.- P127
내가 불빛들에게서 고개를 돌리려 할 때마다 그것들은 시위하는 듯이, 입을 모아 야유하는 듯이 우울한 어둠 속에서 저마다 고함 지르며 손뼉을 쳐대고 있었다.- P127
"......나는 빈손이 되고 싶소, 어째서......!"- P131
어떻게 살아 있는 동안 빈손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한 어떻게 완전한 빈 몸뚱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P132
"어둠 속에서, 야금야금 음식을 축내며, 방바닥을 손톱으로긁으며 버텨왔어! 이것이 사는 건가? 이대로 살아남으라는 건가? 그게 결국 네 양심이라는 건가? 똑바로 말해봐, 넌 그저 달아나고 싶은 거야. 그렇지? 나한테서, 이런 볼썽사나운 놈한테서 도망치려는 거지!"- P134
".....도망치려는 거야, 영영 잊어버리려는 거야! 넌, 넌 나보다 더 비겁한 인간이야......!"- P134
"불을 켜세요!"- P134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없어."- P135
"저기서, 네 베란다에서 내 방을 보고 싶어."- P136
"저기 어떤 사람이 죽어 있어."- P137
"…………더 견딜 수 없어서 죽였어."- P137
다 끝났다.
저 사내는 죽을 것이다. 인숙언니도 죽을 것이다. 나는 뻔뻔스럽게 한낮의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P138
그 어둠 위로 수천수만의 불빛들이 일제히 점화되었다. 그것들은 마른 톱밥을 사른 불티들처럼 지상의 어둠을 에워싸고 너울대다가 이윽고 먹빛 허공 속으로 손짓하며 스러져갔다. 어디선가 목청껏 고함치는 소리, 합창 소리, 폭죽처럼 터지는 휘파람 소리들이 아득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P141
일분일초를 맹렬하게 싸워나가고 있었다.- P150
"난 다 잊어버렸어."- P158
몸집이 큰 사람이 침묵을 지키면 그의 몸이 송두리째 벽처럼 느껴진다. 나는 헛되이 목청을 높여 그 벽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억울해, 억울하단 말이다아." 그러나 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P159
"집에는 가고 싶지 않다니까.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아."- P164
이상한 일이었다.
한 번도 나의 집에서는 잠들 수 없었던 몸이 간절하게 잠을원하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향해 날카로운 번민들을 겨누고있던 어둠은 이제는 고요하게 공기 중에 섞여 내 취하고 피로한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P165
"일단 이 집에 왔으니 넌 손님이야. 손님은 주인마님 말씀을 듣는 법이지."- P166
나에게는 떠나는 일이나 머무르는 일이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세상이야 달라질 것이 없었다.- P178
밤이 깊을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P180
나는 여전히 껍데기였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 이 새벽, 출근하기 위해 머리를 감는 선주, 아침 밥상, 주름살투성이의 어머니, 석유곤로에 데워진 세숫물, 아랫목에서 뒤척이는 동걸의 분신, 그것이 현실이었다.- P182
객실의 환한 차창이 비추지 않는 곳으로 걸어가면 마음은 어두웠고, 객실의 창이 비추는 곳으로 가면 다시 마음이 밝았다.- P182
‘이 바보들아.‘ 그들에게 나는 속으로 말했다. ‘저 녀석은 우리를 오래전부터 배신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야.‘- P183
아버지를 비롯하여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미래를 걱정했다. 나는 남들이 하는 취직 공부나 학점 관리에 마음을 써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184
나는 무엇에 적응할 자신이 있었다.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으며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가 됐든 스스로를 바꿀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다만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늦추고 있는 셈이었다. 느릿느릿 게으름을 피우며 나는 인생을 미루고 있었다.- P184
모든 것이 변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P185
사물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못 견디게 괴롭던 모든 것들은 세월이 지나자 상처 입은 나의 몸 위로 굴러가 그들이 박힐 자리에 박히고 있었다.- P186
나는 종이컵을 우그러뜨려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제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우연히 만난 선주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초조한 눈빛, 사교적이면서도 어딘가 경멸이 어린 듯한 형수의 말투, 형들이 이따금씩 던지곤 하는 나의 미래에 관한 질문들, 내가 전화를 걸면 바쁘다는 엄살부터 부리는 친구 녀석들, 그 모든 것에 나는 어느 만큼씩 지쳐 있었다.
그해 가을 나는 결국 취직을 했다.- P186
그들은 우리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와서 그것을 어쩔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한 걸음씩 물러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P187
나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직장 생활은 의외로 견딜 만했다. 최소한 내 몫의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위로를 받았다. 처음에는 삼 개월쯤 하고 집어치우게 되리라 했던 일이 반년이 갔다. 반년이 지나자 경력이 되게 일 년은 붙어 있자 싶어 일 년을 채웠다. 그러고 나니 그런대로 모든 것이 내 몸에 맞게 되어 다시 일 년이 흘러갔다.- P187
동료들과는 그럭저럭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갔다. 동걸의 예언대로 나는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모두들 나에게 신통하다고 말했다.- P187
친구 녀석들의 모임이 재개되었다. 나는 왠지 그곳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다. 혼자라는 것은 피가 끓고 눈이 부신 젊음이 있을 때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지 이제는 내 몸에 잘 맞는 껍질이었다. 그 껍질 속에서 나는 편안했다.- P187
따로따로, 우리들은 참으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P187
나는 야간열차를 잊었다. 내 안에 생동하던 젊음의 빛이 바램과 함께 야간열차는 서서히 잊혀졌다.- P188
나와 함께 벽제에 가지 않을래.- P192
빽빽하게 차들이 늘어선 거리를 나는 걷고 있었다. 어디로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못한 채로 나는 계속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길을 잃은 사람처럼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돌아보면서도 발은 계속 앞으로 내디뎌지고 있었다.- P192
벽제,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들어오고 상상했던 벽제는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석회 냄새가자욱하게 고여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정작 지나가는 길에 본 그곳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했고 고급 차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화장터로만 알려졌던 그곳은 이제 가볼 만한 유원지가 되어 있었다.- P193
"오지마, 오지 마라 제발!"- P194
"난 떠난다."- P194
나는 시계탑 앞에 서서 기다렸다. 내가 놓쳐온 모든 것을 기다리듯이 나는 기다렸다. 내가 사랑하지 않았고 다만 경멸하며 흘려버린 젊음을 기다리듯이 묵묵히 기다렸다. 기다림만이 나를 속죄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P195
"동해."
...(중략)...
"거기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어."- P196
"동걸아."
나는 무작정 녀석을 불렀다.
동걸을 뒤돌아서서 나를 보았다. 그는 웃어 보이려는 모양이었으나 윗입술을 일그러뜨렸을 뿐이었다.- P197
나는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웃을 수도 없었다. 힘센 손이 등 뒤에서 코와 입을 틀어막은 것 같았다.- P198
난간에 매달렸다.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빗발이 얼굴에 몰아쳤다. 남은 왼발을 난간에 올려놓았다.
기차 바퀴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P198
나는 객실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엎어지며 다친 무릎과 더러운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비비며 빗발 속에서 춤추는 인가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P198
좋지 않은 예감이란 혼자서 간직하고 있을수록 부풀려지게 마련이었다.- P202
피는 피로써만 씻을 수 있다.- P217
그는 늦은 밤에 숲을 헤매다가 덫에 걸린 짐승과 같았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그는 덫에 걸렸다. 그는 새벽을 기다렸다.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으므로, 울부짖고 신음하는 것에마저 지쳐버렸으므로 이제 그는 날카로운 덫에 찢겨 피가 흐르는 다리를 핥으며 기다렸다.- P221
새벽은 고통을 멎게 해줄 것이었다. 박명 속에서 신(神)의얼굴을 한 사냥꾼이 걸어올 것이었다. 자신의 노획물을 확인하고 기뻐하며, 솜씨 좋은 사냥꾼은 일격에 그를 사살해줄 것이었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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