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나오는 망고와 수류탄이 어떤 관계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원제목 <망고와 수류탄-생활사 이론(マンゴ と手榴彈-生活史の理論)>을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책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연구하는 기시 마사히코교수가 오키나와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청취하는 방식으로 오키나와 사회의 변천사를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회상을 정리하는 연구방법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습니다.
오키나와는 원래 1429년에 3개의 왕국이 통일되어 성립한 류큐왕국이었습니다. 1609년경 사쓰마번의 속국이 되었다가 메이지 시대인 1872년 류큐번으로 강등하여 속령임을 분명히 하더니 1879년에는 강제병합하여 오키나와현을 설치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 본토 상륙을 노리는 미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오키나와에서 벌어졌습니다. 전투는 결국 미군의 승리로 끝났는데,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두 개씩 준 다음 자폭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2015년 저자가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증언에 나선 여성이 연구진에게 대접한 것이 망고였다는 것입니다. 칼집을 낸 망고는 꼭 수류탄처럼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미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와 일본군이 강요한 자폭이 벌어졌던 그때의 기억이 끔찍할 법도 한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전투를 두고 일본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일본은 가해자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인 척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일본은 진주만 공습 이전부터 주변국가들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것이므로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은 크게 잘못된 것 맞습니다.
사회학의 질적 조사 방법론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개인의 경험을 듣다보니 때로는 이야기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차별을 들었습니다. 차별은 때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불이익의 상태만이 아니라 그 상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야기 코스케(八木晃介)의 경우 구술자의 구술을 부정하고 사회문제의 문제성을 이론 안에서 유지하는 ‘폭력적’인 방법을 구사했지만, 사쿠라이 아츠시(桜井 厚)는 ‘대화적 구축주의’라는 방법론에서는 조사자가 구술자의 구술내용을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자는 도쿄의 피차별부락에서의 해방운동에 대하여 부정적 의견을 말하는 남성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차별 같은 거 이제는 없어요…당신들이 차별, 차별하면서 시끄럽게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요.(71쪽)” 차별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별을 받았다는 혹은 받은 적이 없다는 인식은 당사자들에 따른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차별의 일반화에 따른 오류일 가능성이 있겠단 싶었습니다.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책으로 묶어낸 <설국을 가다>에서는 시마자키 도손(島崎 藤村)의 「하카이(破戒, 파계, 1906년)」를 소개하면서 차별에 대한 사회학적 방법론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도하여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가는 것이 옳은지 생각할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내와 함께 <망고와 수류탄>을 읽고서는 오키나와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일정을 맞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