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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 마쓰이에 마사시
  • 13,050원 (10%720)
  • 2018-03-06
  • : 2,310

철학이나 자기계발서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그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는 재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위에 서는 이유는 내가 삶에서 배워야 하는 여러 가르침들 중에서 소설은 단 한 가지만 제시한다는 점이다. 머리가 나쁜 나로서는 한 번에 여러 가르침을 설명도 없이 제시하였을 때,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할뿐더러 여러 가르침들 중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철학이나 자기계발서를 소설처럼 후루룩 읽었을 때는 그야말로 시간낭비일 뿐 유익한 독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그동안의 독서 경험에서 얻은 나의 판단이었다. 예컨대 열 개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철학책이라면 열 번을 반복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그 속뜻을 완전히 깨우치기 어렵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철학이나 인문서는 소설처럼 실제적인 설명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의 가르침이 철학처럼 명확하지 않을 때가 더러 있긴 하지만...


"인간은 애초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키스를 했어도 잠자리를 함께했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은 남는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라는 유별난 생물이 된 이래로, 전달될 게 전달되지 않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말은 머릿속에서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터무니없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엉뚱한 해석을 하게 한다."  (P.244)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사람은 결국 죽음과 허무에 이끌린다'는 것이었다. 이런 느낌은 전적으로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이거나 소설 전체를 흐르는 분위기나 주제에도 부합하지 않는 지나친 편견일 수도 있다. 게다가 소설의 전반적인 서사나 작가의 의도 역시 나와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은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이미 없어진 슈퍼마켓을 그리워하며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조용한 공간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노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연약한 게 흡사 환상처럼 보였다."  (P.146)


소설은 주인공인 오카다 씨가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고 십오 년 넘게 살았던 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나게 된 장면으로 시작한다. 40대 후반의 남성, 출판사에 다니고 스무 살 넘은 아들은 미국에 유학을 가 있다. 아내와 합의를 본 기한은 두 달.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지만 오카다 씨가 원하는 조건은 두 가지, 근처에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있을 것과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부동산을 열 군데 이상 돈 끝에 결국 포기하려는 순간 지인의 소개로 두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구하게 된다. 집주인인 소노다 씨는 미국에 사는 아들 부부가 불러서 이주를 하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기도 하고 집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세를 주겠다는 생각으로 부동산에 내놓지 않았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이사를 하고 오카다 씨는 집과 직장을 오가며 낡은 집을 수리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소노다 씨가 두고 간 고양이 후미를 돌보며 낡은 집을 수리하는 데 무료한 시간을 쓰고 있는 오카다 씨. 그러다 우연히 들른 집 근처의 어느 식당에서 열세 살이나 어린 옛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아내와의 결혼을 이어가던 시절에 5년 동안이나 만났던 그녀의 이름은 가나. 말하자면 내연녀였던 가나 씨는 미래가 없는 오카다 씨와 헤어져 연락을 하지 않던 사이였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가나 씨의 집은 오카다 씨의 집과 아주 가까웠다.


"하늘이 높다. 트레이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놓여 오븐에 넣어지기를 기다리는 버터롤처럼 조개구름이 떠 있다. 공기도 건조하고 얼굴에 닿는 바람도 시원하다. 요 근래 좋은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달리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P.144)


다시 만난 두 사람이 결국 그렇고 그런 관계로 발전하는 뻔한 로맨스 소설을 연상하겠지만 소설의 결말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2년을 약정하고 떠났던 소노다 씨가 귀국하고, 그렇게 공을 들였던 오카다 씨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주게 된다. 그리고 근처에 매물로 나온 땅을 계약하고 미래에 자신이 들어가 살 집을 새롭게 구상하게 되는데...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작가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서 시종일관 기름기를 싹 걷어낸 건조한 문체를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읽는 이들은 이러한 문체로 인해 삶의 허무에 쉽게 젖어들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육체를 맹목적으로 가꾸는 것처럼 영원하지 않은 어떤 대상(예컨대 집과 같은)을 가꾸는 데 필요 이상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남들로부터 '우아하다'는 평을 들었다 한들 그게 과연 우리가 지불한 돈과 시간에 대한 적정한 보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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