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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님의 서재

주인공 목해원 역을 맡은 박민영이야 기본은 하는 배우니 따로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임은섭 역을 맡은 서강준의 발견이 좀 놀라웠다. 솔직히 난 이 배우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예전에 모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이 좋게 말하면 차도남이고, 나쁘게 말하면 얌체 같은 이미지를 맡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선 참하고 단단한 청년의 이미지를 제법 잘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 이입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있다면 그건 엉뚱하게도 은섭의 여동생 휘였다. 그 역을 배우 김환희 양이었는데 낯설지 않은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영화 <곡성>에서다. 악령이 들어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뭣이 중헌디?"를 외쳤던 그 아역 배우가 벌써 커서 여고생으로 나온다. 여기선 엉뚱 발랄하다 못해 4차원 우주소녀로 나온다. 특히 아주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오빠, 언니, 선배라고 부르지만 평소 땐 자기 부모를 제외하고 위아래가 없다. 아무래도 같진 않지만 영화에서의 페르소나를 연기한 듯싶기도 하다. 아무도 휘의 위아래 없는 무개념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휘의 무개념은 전략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긴 무개념이 문제가 아니라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게 더 문제라고 보는데 적어도 휘는 그 정도는 아닌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자신이 전따 즉 전교에서 따돌림받는 정도는 알고 있다. 물론 그런 시골 학교에서 전따래 봤자 서울의 웬만한 학교 2, 3개 반을 합친 정도도 안 될 테니 따돌림의 범위가 그리 넓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괴로워도 슬퍼도 전혀 꿀리지 않은 강인한 멘털과 사회성이 묘하게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얼핏 로맨스물인 건 같지만 여성 서사고, 상처를 치유해 가는 힐링 서사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유심히 본 건 해원이 외가가 있는 장소와 그 안에서 드러나는 비밀과 고백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치고 힘들면 소울 푸드를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자신이 자신을 위로할 때이고, 사람은 외롭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것이 고향일 수도 있고, 어느 산중의 절이나 수도원일 수도 있으며, 별장일 수도 있겠지.


지상에 그런 곳이 단 한 군데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자살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바로 해원이 타향에서 지치고 힘들 때 찾은 곳은 외가였다. 하지만 그곳이라고 그녀에게 마냥 좋은 곳은 아니다. 사실 그곳은 해원이 오래전부터 풀지 못한 비밀과 상처를 묻어두고 떠나 온 곳이기도 하다. 결국 해원의 귀향은 그 문제와 마주하거나 해결하는 데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해원은 엄마가 아빠를 죽인 관계로 외가에 맡겨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다. 아무리 엄마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소문은 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진원이 자신의 베프인 보영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 배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 땐 그런 거 있지 않나?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비밀 하나씩 공유하는 거 말이다. 해원은 보영에게 무슨 비밀을 얘기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해원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보영에게 얘기함으로 영원한 친구 관계를 보장받으려 한다.   

  

 비밀은 원래 나타나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 마음속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 주위에 가장 친한 사람에게 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흘려 보라. 그러면 그 친한 사람은 친구를 변호한답시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술술 불게 되어 있다. 바로 보영이 그덧에 걸려든 것이다. 해원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옹호한답시고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을 얘기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친한 친구를 잃는 치명적 실수가 된다는 걸 나중에 깨닫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정말 좋아하는 베프가 있는가? 비밀 공유도 좋긴 하지만 그 친구가 감당 못할 너무 큰 비밀은 말하지 마라. 어쩌면 아니 십중팔구는 그 때문에 친구를 잃을 수 있다. 그나마 여기선 보영이 실수는 하지만 끝까지 해원과 친구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엄청난 비밀을 말해 버리면 오히려 그 말 한 사람이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런 건 생각도 않고 보영이 신의를 저버렸다고 원망하고 냉정하게 구는 건 해원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한 행동이다.  


그런 만큼 끝까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보영이 같은 친구가 오히려 진정한 친구일 수 있다. 물은 건너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친구가 그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며 다가가려고 하는데 한 번쯤은 용서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는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신뢰 좋아하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밀이 원래 드러나라고 있는 것처럼 신뢰 역시도 깨라고 있는 거라고 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될까.


인간관계를 신뢰에만 그 기조를 둔다면 상처는 안 받을 수 있고 그것이 깨졌을 때 할 말이 있겠지만 진실한 관계 더 깊어지는 관계는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뢰 하나 지켜나가는 것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는 그것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누구는 그랬다. 사람은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보영이 본의 아니게 해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됐지만 누군가에겐 이해받고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보영의 말대로 신뢰가 깨졌다고 예전을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 볼 수 있다. 그래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한 번 용서해 줬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때는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볼 일이고, 지금은 용서해 주는 것이 맞다. 사람이 용서해 줘야 할 때 용서해 주지 못하면 그것도 평생 후회로 남는다. 무엇보다 해원이 은섭을 가지지 않았는가. 보영은 은섭에게 사랑을 거절당했다. 해원에게 용서받지 못한다면 불쌍하지 않은가.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건 고백이다. 비밀의 폭로가 누구에게는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해원과 보영의 경우), 비밀은 누구에겐 고백이 될 수 있다. 그건 해원과 이모의 경우다. 이 이야기엔 반전이 숨어 있는데 해원의 엄마가 그녀의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원의 이모인 심명여가 죽인 것이다. 그나마 배우자 살인은 상대적으로 형이 짧지만 처제가 형부를 살해했다면 그건 무기다. 그것을 막고자 언니가 자신이 죽인 것으로 하고 대신 형을 산 것이다. 이건 확실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우발적이든 고의적이든 동생이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건 자신이 매 맞는 아내기 때문이다. 형부에게 언니가 매를 맞는데 그 상황에서 이성적이는 쉽지 않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살인을 저질렀는데 동생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은 편할 리 없다. 차라리 육체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 하지만 그건 언니의 생각이고, 그 사실을 함구하고 언니 대신 조카를 키워야 하는 동생의 마음은 육체는 편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지옥이다. 10년 뒤 그것을 조카에게 고백해야 한다면 조카가 받을 충격은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고백해야 할 때 고백하지 못해 그녀는 병까지 얻었다. 그리고 자신은 병이 나도 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원의 이모에겐 병이 최악의 은총 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차선의 은총이거나.


10년 만에 고백을 하고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았다. 선택한 방법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것이다. 글쎄, 그녀가 천주교 신자였다면 진작에 신부를 찾아가 고백성사라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질 수도 있겠지. 마침 신명여는 작가다. 지금까지는 익명의 독자가 그녀의 소설을 읽었겠지만 지금은 독자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 그건 조카인 해원이다. 신명여가 이 문제를 잘만 푼다면 그녀는 훨씬 더 좋고 깊어진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절필을 하기도 했는데 그 마음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무슨 (얼어 죽을) 소설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해원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을 충격도 충격이지만 과연 이모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선 숙제로 남겨 놓는다. 사랑도 쉽지 않은데 용서는 쉽겠는가. 하지만 보영을 생각하면 해원은 둘 다를 용서해야 한다. 이 사람은 용서하면서 저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건 모순이니까. 용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앙해마지 않는 도 선생님의 <죄와 벌>의 또 다른 버전 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고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다소 소녀적 감성을 걷어 낸다면 꽤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도 같은데 뭐 이 자체만으로도 나쁘진 않다. 더구나 연출 잘하기로 유명한 한지승 감독의 연출도 보는 내내 좋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소녀적 감성이란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성 작가의 섬세함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남성다운 선 굵음을 겁내 한 발 물러선 것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론 좋긴 한데 경탄할만한 구석이 없다. 조금 더 치열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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