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가 참 좋아졌다. 그렇다고 이것이 시가 소설보다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어쩐지 죄송합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내가 목숨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작가들이 소설을 쓰고 있으므로 당분간은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의 나는 예전의 그 어떤 때에 비해 더없이 시가 좋다. 이 말을 하기까지 망설인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제일 큰 이유는 내 주변에 시를 엄청 좋아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가 좋아서 출판사나 문창과에 갔고, 신춘문예 본심에 오르고, 진짜로 시인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시를 정말 모르고... 아니, 그들에 비하지 않더라도 시는 내게 참 어려운 장르다. 이렇게 잘 모르는데 시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물론 소설이라고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요즘 시가 좋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몇 번의 계기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최근에 김연덕, 강우근 시인이 쓴 「우리 모두 처음엔 시를 몰랐습니다」를 읽은 것이다. 시집이 아니라 시인의 산문을 읽고 시가 좋아졌다고 해도 되는 걸까? 어쩌면 난 결국 이야기가 좋은 게 아닌가? 그렇지만... 이 산문집의 전반부에 실린 김연덕 시인의 에세이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특히 그가 시에 빠지게 된 시기 정서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시를 더 열심히 읽고 싶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는 늘 묘한 무력감, 수치심, 옅은 분노.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 지금 이 교실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지만 속에 답답한 게 너무 많고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얘기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기분들.
그런 마음들은 내가 겪었고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은 시를 읽으며 '뭐야, 나만 이상한 게 아니잖아?'라고 느꼈다고 했다. 비록 나는 시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해준 김연덕 시인의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시가 정말로 그런 순간을 줄 수 있다면 시를 더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최근에 책장 정리를 하면서 '와 진짜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를 외치게 한 시를 만났다. 아빠의 책장에서 나온 나희덕 시인의 것이었다.
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나희덕, 나 서른이 되면 中
와!!!!!! 진짜 뭐지???????
이 시를 발견하고 진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마음 속으로, 또 문자로는 이미 몇 번이고 비명을 질렀다... 정말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라고. 일기장에 저 구절을 베껴쓰고 챗지피티가 된 것 마냥 **와 이거 정말 정확해** 같은 말만 우다다 적어내렸다.
너무 호들갑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러한 모순된 마음을... 시가 아니라 소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최은영의 소설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최은영, 애쓰지 않아도 中
나희덕의 시와 최은영의 소설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분명 나는 최은영의 소설에도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런데 왜 시에서만 나만 이상하지 않은 거였다고 깨닫고 비명을 지른 것일까?
그것은 열여섯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뺨을 내려치고 싶다고
정말로 간절히 생각했던 적 있기 때문이다...
아 문자로 하고보니 진짜 정신뿡자 같네
그만큼 이상하지?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마음, 이런 이미지 정도로도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희덕 시인의 시구에 어떠한 인과가 덧붙여져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장면이 있는 소설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어쩐지 쓸 법한 소설가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이 시만큼 적확하게 내 마음에 들어앉을 수 있을까? 내겐 이제 그렇게 생각하기 되기까지의 어떠한 전후 사정이 없기 때문에 단언하기 망설여진다.
소설이라면 이건 정말 이상한 이야기겠지? 이것은 내가 시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시라면... 문득 나 그 사람의 뺨을 때려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 라고 고백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내 눈으로 읽었으니까.
나는 소설이 좋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 아무런 용기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너무나 좋아서 오히려 더 머뭇거린 적도 있다. 하지만 소설이 좋다는 사실과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의문도 망설임도 공백도 가져본 적이 없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전하는 것이 소설이고, 나는 그게 좋다. 소설이 좋다고 나는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울컥 찾아오는 그 마음들, 이유도 전조도 없이 내게 문득 들이닥치는 기분들. 그것들은 가끔 시의 영역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망설이고 의문하면서, 시가... 좋을지도 몰라요, 라고. 아주 간신히 쓰는 것이다.
이것은 시를 좋아하고 있다기 보다는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가 여전히 이상하고 잘 모르겠고 어렵고 그렇다. 그럼에도 시를 좋아해보고 싶다. 어쩌면 이건 내가 세상과 나를 다루고 생각하는 방식인 것 같다.
시는 참 이상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나만 이상하지 않다는... 또 이상한 기분인지 사실인지 모를 것을 건져 올린다.
이정도의 마음으로도 괜찮은 걸까?
그래도 언제나 얘기하듯... 더 가보고 싶다, 아직. 아직은 잘 모르는 상태로,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