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사실 패티 김의 노래 제목이다. 백호형은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 ㅡ얀 겨울에 떠나요' 라고 노래했다.
가을은 아픈 이별의 계절이고 낭만의 계절이며 쇼팽의 계절이다. 올해는 가을 비가 심하게 내려, 가을 타시는 분들의 심경을 더욱 손상시켰으리라 예상해본다.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가을을 남기고 떠났다. 1810년 생, 39세의 나이였다. 공식 사인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심낭염, 즉 심장 질환의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했고, 수익금 대부분을 조국의 독립 자금으로 보내 독립운동가로도 잘 알려진 그는 가을에 그렇게 떠났다.
쇼팽이 남기고 간 가을, 폴란드는 그를 기리기위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열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피아노 콩쿠르로서 1927년 시작되었다. 바르샤바의 이 경연은 쇼팽의 기일인 10월 17일을 전 후하여 3주간 진행되는데 올림픽 보다 긴 5년 주기로 열린다. 다음을 기약하려면 무려 5년을 인고해야 한다. 경연의 권위와 그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매회 마다 1등을 내놓는 경연도 아니다. 참가자의 무게가 그만하지 못하면 1등을 배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1등이 없었던 경연이 3차례 있었고 2등이 없는 경연도 있었다. 아차하면 10년간 1등 공석인 것이다. 그렇게 바르샤바의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에 관한한 최고 권위를 스스로 세우며 이어져온 경연인 것이다. 이 경연의 우승자는 정녕 그만한 무게가 있는 영예로운 권위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위엄을 조성진이 해낸 것이다)
바르샤바는 2025년 우승자를 발표했다. 20일 발표이지만 국내에는 시차로 인해 하루 늦게 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바로 오늘이다. 바르샤바 심사위원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한 미국인 '에릭 루' 에게 1위 라는 위엄을 주었다. 10년 전, 조성진 선수가 우승의 업적을 이루던 해, 그는 4위였다. 그는 오늘 자신의 10년 염원을 이루고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쇼팽은 곧 피아노이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식인데, 슈만은 나이가 같은 쇼팽을 이렇게 평가했다, '다들 어디갔어?!!! 다들 일루와서 싹다 모자들 벗으셔, 천재가 나타나셨어!!!'. 피아노 연주의 대가 루빈시타인은 쇼팽을 일러 '피아노의 절대 神' 이라고 칭했다.
그런 쇼팽이 남긴 피아노 명곡 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대한 민국 피아노 연주의 대가 백건우 형님이 연주한 곡이 있다. 가을을 남기고 간 연인처럼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이다.
작품번호 14번, Krakowiak.
Krakowiak 은 2박자 당김음을 사용하여 빠르고 경쾌한 특징을 가진 폴란드 전통 무곡이라고 한다. 쇼팽은 이 무곡에 콘체르토 형식을 씌워 편곡했다. 쇼팽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한 Krakowiak을 백건우 형께서 연주했는데.....
나는 이 음반을 받아 떨리는 손으로 개봉하고, 시디를 처음 듣던 그 순간을 감히 잊을 수가 없다. 쇼팽에 경도된 것인지 백건우의 손가락 마디에 경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그만 얼어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동의 감동. 형언 할 수 없는 그 감동을 담은 연주를 이곳에 올려본다.
협연은 말할 것도 없이 바르샤바 필이다. 지휘는 안토니 비트, 그는 쇼팽의 Krakowiak에 관한한 대가이다. 안토니 비트가 네볼신과 연주한 Krakowiak은 백건우의 연주와 나란하다. 이런 경우도 쉽지 않은듯 한데, 쇼팽의 Krakowiak은 백건우와 네볼신으로 끝이다.
고전음악과 친근하지 않은 그 누구라도 백건우가 연주하고 안토니 비트가 지휘한 바르샤바 필의 이 음반을 듣는 다면,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아, 어쩌면 쇼팽을 다시 생각하게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쓸쓸히, 그리고 아프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아니 사람, 쇼팽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