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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空
'술 권하는 사회', 라는 현진건의 소설이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자신의 무능력한 문제를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허구한 날 밤 늦도록 술만 푼다. 한마디로, 그냥 술에 쩔어 산다.

주인공은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 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무능력한 지식인 가장인 것이다. 주인공은 환경 탓을 하며 자신의 문제를 합리화 한다. 소설 속의 아내는 이런 남편의 일상을 옆에서 바라본다. 이 냥반이 남편이 되어갔고는 대체 왜이러시나, 아내는 그렇게 사회를 탓하며 술만 퍼대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주인공인 남편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가 되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독자도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 무능력한 주인공은 바로 현진건 당신 아니오? 라고 의심하는 독자도 있다. 물론 다 그럴 것이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말이다.


<별로 재미가 없는 글 인지라 음악을 들으며.....> 

 어떤 이는 사회 환경이 이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거냐, 비겁하다, 고 말 할 수도 있다. 어느 쪽 이든 생각은 자유이고, 또 어느 쪽 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

어쨌거나나쁜 일이 생기면 본인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고, 자신의 뜻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외부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연의 사물이든 그 무엇이든, 환경과 밀접한 상관성을 가지는 것은 틀림이 없으니 말이다.

남 탓을 하려고 그러냐, 반문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모든 시대는 그 시대가 반드시 필요로 하거나, 반드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 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 '시대 정신' 이라고 한다. 이는 환경의 영향력을 무시한다면 존재할 수 없는 용어일 것이다.

나의 시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면, 소주에 밥을 말아 먹던 사람과 마주하기도 한다. 소주에 밥을 말아 먹었다고 하니, '술 권하는 사회'를 떠올릴 수도 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전신에 술독이 올라 손을 벌벌 떨며 깡소주를 들이키는 주정뱅이에, 정신이 온전하지 않겠구나 싶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쪽 주인공은 술 권하는 사회의 그 쪽 주인공 과는 양상이 좀 다른, 조태일 선생이기 때문이다. 뭐 조태일 선생이라고 용빼는 재주라도 있더란 말이냐, 라고 반문한다면 또 딱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다.

조태일 시인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당시의 시인 조태일과 후에 시인이 된 나의 절친이 남긴 스토리가 이 이야기의 주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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