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가족은 어떻게
청년여성을 옭아매는가
가족위험
계급재생산의 열망과 강압적 통제
계급재생산을 향한 열망
(전략). 자살생각에 이르게 한 과거를 서사화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 특히아버지와 잦은 갈등을 빚었고, 이러한 갈등이 성장기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노동성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자기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P25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성과중심주의로 나타나는 불안을 구성한 사회적 배경이다. 부모세대의 불안은 한국의 발전주의역사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P26
그러나 착취적인 노동환경 속에서도 근면과 성실을 통해중산층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국가의 약속은 일부 국민들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P26
이런 배경에서, 부모의 성과중심주의와 여기에서 비롯되는 비난과 비하가 청년여성들의 자살서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서사라는 점은 부모세대의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아직도 현현하여 현재적 삶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P27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은 복지가 미비한 한국사회의제도적 영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 다른 요인으로는 불안정한 청년 노동이라는 현실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3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P27
한국의 산업화 모델에서 고안된 국민의료보험 등의 복지제도는 사회주의를 경계하고자 했던 서구사회와는 달리 소득재분배보다는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목적에서 행해졌다. 정권의 친위세력을 배려함과 동시에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항하는 중산층 및 노동계급을 산업 현장에 다시 투입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¹- P28
1장 가족위험: 계급재생산의 열망과 강압적 통제
1. 이연호, 《불평등발전과 민주주의》, 박영사, 2013, 280~311쪽.- P201
복지제도에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은 노동소득이 없는 노후에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특히 가족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없는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빈곤층에 흡수된다.- P29
생계부양자인 아버지의 경제적지원을 바탕으로 어머니는 노동소득의 일부를 부동산에 투기하여 자산을 증식하면서,⁴ 다른 한편으로는 자녀의 교육을 관리하는 젠더적 실천을 통해 노후의 부재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대체해온 것이다.⁵- P29
4 최시현,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창비, 2021.
5. 박소진, ‘자기관리‘와 ‘가족경영시대의 불안한 삶: 신자유주의와신자유주의적 주체>, 《경제와사회》, 비판사회학회, 2009, 12~39쪽.- P201
비중산층 부모들도 자녀의 계급상승을 욕망한다. 다만활용할 별다른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노후자금 일부를 자녀에게 투자하며 자녀의 계급상승을 지원한다.- P30
그러나 이때 자녀들이 반드시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의성과를 내는 건 아니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 P30
열망에 뒤따르는 비난과 폭력
20대 초반을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보낸명신의 아버지 역시 그랬다. (중략). 이후 명신은 "우리나라는 대학을 나와야 살 수 있는 세상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전문대에 진학해 졸업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했던 학자금 또한 아버지가 모두 부담했다.- P31
대기업 "제작팀에 입사 지원을 하기에는스펙이 너무 부족하고, 그렇다고 제작부에 들어가서 막내로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하니 나이가 너무 많은 상황에서 명신은 결국 파견계약직으로 방송국에 입사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방송국을 바꿔가면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고 있다.- P31
아버지는 "학원비 정도는 내줄 테니까 너 생활비나 이런 거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라"라며 지속적으로 공무원이나 공인중개사 준비를 권유한다. 그러나명신이 생각하기에 평생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시험에 통과하기란 합격 가능성이 거의 제로로 수렴하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가깝다.- P32
명신을 향한 아버지의 비난은 명신의 불안정한 미래에대한 우려와 걱정에서 비롯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경제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명신의 품행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자녀가 부모의 지원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P33
그리고 명신의 말대로, 노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것도 아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안 되는 일 역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P34
때로 부모의 성과중심주의는 ‘때려서라도 공부를 하게 만들겠다‘는 훈육관으로 이어져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P36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부모의 비난은 자살전화 상담원이 꼽은 청년여성 자살서사 중 하나의 사례로 언급될 정도로 빈번하게 관찰된다.⁸- P36
8. 주지영, <목소리로 만난 위기의 청년들>,
김현수·이현정·장숙랑·이기연·주지영·박건우, 《가장 외로운 선택》,
북하우스, 2022,205~236쪽.- P201
한편, 부모가 노골적으로 성과를 강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원이 부족한 부모에게서 받은 경제적 지원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괴로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P36
성과중심주의의 양가성
한편, 자녀의 성과에 대한 부모의 관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자녀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무관심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P38
(전략). 민준의 이야기 속에서 중산층 부모를 둔 친구들은 대학입시 과정에서 부모에게 유망한전공을 추천받고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를 점검받으며 입시계획에 대한 조언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부모의 조언을 통해 원하는 직업에 맞춘 수업의 커리큘럼을 짜는 등의 지원을 받았다.- P39
(전략). 하지만 친구들이 부모의 자원을 활용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지금부터 하면 다 된다"는부모의 응원은 "취업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로, 즉 무지에따른 지나친 낙관으로 느껴진다.- P41
정리하자면, 청년여성들의 서사 속 가족은 결국 자신의성과가 담보되어야 안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가부강적 가족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특히 정서적 친밀성을 나눌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P42
마찬가지로 자녀의 미래에 대한 낙관 역시 경쟁사회에서
‘방임‘으로 의미화되면서 부모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유발한다.- P43
가정에서 이뤄지는 강압적 통제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성과중심주의뿐만 아니라 부모의 가부장적 권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중략).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험은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들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야기한다- P44
강압적 통제란, 성역할 규범이 존재하는 성차별적사회에서 여성의 행동을 비난함으로써 여성을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남성들이 ‘성에 대한 특권‘을 유지하고자 사적 공간에서 여성들에게 가하는 지배수단을 의미한다.⁹- P44
9 Evan Stark and Marianne Hester, "Coercive Control: Update and Review", Violence Against Women 25 (1), 2019, pp.81~104.;허민숙,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친밀한 관계에서의강압적 통제와 가정폭력 재개념화를 위한 연구>, 《페미니즘 연구》12(2), 한국여성연구소, 2012, 69~103쪽에서 재인용.- P202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육체적 상흔들은 여성 통제의 결과이므로, 핵심은 폭력이 아닌 통제에 있다.¹¹ 아내학대나 아동학대 모두 이들을 자신의 통제 대상으로 인식하는 가부장적 태도에서 기인한다는점에서 가부장에 의한 강압적 통제로 의미화될 수 있다.- P45
11 허민숙,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 친밀한 관계에서의강압적 통제와 가정폭력 재개념화를 위한 연구>, <페미니즘 연구>12(2), 69-103.- P202
가부장적 사회의 가족문화에서 폭력은 때때로 남성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손상된 자신의 지위를 가정 내에서 재구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중략). 아버지들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가족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며 폭력을 행사했다.- P45
가부장적 가족구조 아래에서 아내와 자녀는 내가 아닌 존재들로, 내가 정의를 내려주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P47
그래서 피해자 입장에서 폭력은 ‘우발적‘이지만, 가해자입장에서 폭력은 ‘정당한 행위‘로 자리잡는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화나게 했다는 말은 적어도 그들에게는 진실이다.- P47
가부장에 의한 폭력은 가족구성원에 대한 훈육으로 정당화된다.- P50
부모의 폭력은 반드시 물리적 폭행이 동반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자녀의 삶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후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소현은 신체적 폭력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술꼬장"을 견뎌야 했다.- P51
차별과 편애로 나타나는 통제
한편, 일부 여성들에게 강압적 통제는 다른 형제자리에대한 편애로 경험된다. 대체로 이러한 편애는 자녀의 성별을따라, 아들에게로 집중된다.- P52
재림 역시 유년 시절부터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남자 형제에게만 투여되고 돌봄노동은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이 제한되는 것을 넘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해왔다.- P53
재림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재림에게 ‘혼자만의방‘이 없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가족들이 그녀의 생활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P55
한편, 가부장적 가족구조 아래에서 폭력은 아버지에게가부장의 권위를 위임받은 아들에 의해서 자행되기도 한다.- P59
2부
홀로서기를 가로막는
노동위험
3장
노동불안정
미래 없는 노동
무엇이 독립을 가로막는가
가족으로부터 기인한 위험들은 가족으로부터의 ‘탈출‘, 즉 경제 및 주거독립을 통해 완화될 수 있다. 경제적 독립은 경제적- P79
청년세대가 마주한 취업난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성차별은 청년여성들의 노동불안정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상황의 배 경에는 분절노동시장이라는 한국노동시장의 특징이 자리한다.- P80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은 흔히 ‘유리천장‘이 대표적으로거론되지만, 유리천장이 뜻하는 여성의 승진 불이익은 사실상 중심부 노동시장에서 주로 발생하기에 일부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에만 적합한 개념이다.- P80
(전략). 또한 부서나 회사 내 남성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이 다수 근무하는 일자리는 남성과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유리천장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지도않는다.- P81
. 여성이 집중된 직종들은 특히 저임금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자리 내 여성의 비율은 임금수준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배치 차별로 명명되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성차별은 불안정성의 성별화를 강화한다.- P81
직종내 여성 비율에 따라 임금이 낮아지는 경향에 더해 사업체의 규모 또한 저임금화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⁴- P81
우선 본 연구 참여자들의 노동이력을 정리한 <표 1>*에서 식별된 직업을 중심으로 고졸 및 초대졸 노동자들의 직업 성비와 임금현황을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 이 중 정서의 경우 4년제 유명 예술대학을 중퇴한 후 해외유학을 한경험이 있어 고졸 및 초대졸이 아닌 대졸자 그룹으로 분류했다.
** 표준직업분류를 참고하여 참여자들이 언급한 일자리의 코드를 식별하였으며, 해당 코드를 참고하여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와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의 자료를 통해 노동자들의 직업 성비 및 임금현황을 재구성하였다.- P83
이처럼 4년제 대학 졸업장 여부는 노동안정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4년제 대학졸업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두 집단을 통해 노동불안정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P86
비자발적 이직이 만연한 여성집중 저숙련(?)" 일자리
비대졸 여성들이 일하는 직종은 대체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집중직종으로, 성별에 따른 임금차이가 크지 않고연봉이 3000만 원 이하로 형성되어 있다.
* 남성중심적 노동시장 내에서 숙련은 여성노동의 평가절하를 정당화하는 개념적 도구로 활용된다. 여성들의 노동은 저숙련 노동으로 간주되어 저임금의 정당한 사유로 인식되지만, 실제 노동현장에서 여성들이 주로 하는 일은 저숙련이라기보다는 ‘여성‘이 한다는 이유로인해 손쉽게 저숙련으로 치부된다. 예를 들어, 콜센터 노동은 대표적인 저숙련 일자리로 여겨지지만, 실제 참여관찰을 수행하며 해당 일자리를 경험한 연구자에 따르면 이 노동에도 ‘숙련‘은 존재한다. 남성중심적 노동시장에서 숙련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라. 김현아, 《감정노동, 그 이름의 함정》, 푸른사상, 2018.- P87
실제 정규 보육교사로 현장에서 일한 바 있는 재림은 과다한 업무량, 부족한 임금 외에도 원장의 폭력적 행동, 임금갈취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