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슬픔의 틈새
몽키공쥬 2025/09/1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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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틈새
- 이금이
- 16,650원 (10%↓
920) - 2025-08-15
: 16,73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더욱 의미 있는 해인데, 이금이 작가의 신간이 이렇게 딱 맞춰 나오다니 기쁜 일이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뒤잇는 3부작으로, ‘슬픔의 틈새‘라는 제목은 읽기 전부터 어떤 스토리일지 예상이 되는 동시에, 표지에 그려진 한복을 입은 여성이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는 그림에서조차 뭔가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번에도 역시 한인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여성의 이름은 주단옥이다. 단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사이다 보니, 마치 그녀의 생생한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하고 꿋꿋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간 한 여성의 위인전 같기도 하다. 소설임에도 어쩜 이렇게 시대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서사를 구현했을까. 사할린에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사할린 한인들의 삶에 대한 자료 조사와 관련 도서 및 논문 등을 찾아 읽는 등 가능한 사실에 기반하여 작품을 쓴 이금이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느껴진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자리를 준다는 일본의 회유책에 속아 남사할린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40년간 사할린 남쪽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지배한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사할린이 다시 소련의 지배 체제로 넘어가면서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조선인도 아닌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조국에 끝내 가지 못한 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죽음을 맞기도 한다.
단옥의 아버지인 만석 역시 일본과 계약을 맺고 남사할린에 머무르며 탄광촌에서 일을 하는 노무자다.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만석은 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사할린으로 초대한다. 사할린에 오는 길에 장남 성복은 돈을 벌겠다는 편지와 함께 사라져버리고 어머니 덕춘과 단옥, 남동생인 영복은 사할린에서 만석과 재회한다. 만석 가족들은 조선에 남겨진 조부모님과 둘째 딸인 영옥, 행방이 묘연한 장남 성복이 다 같이 모여 살 날을 꿈꾸며 힘든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이들의 팍팍한 삶에 의지가 된 것은 유키에 가족이다. 유키에의 의붓아버지 정만은 만석과 의형제 사이다. 유키에보다 한 살 많은 단옥은 유키에와 자매처럼 지내며 같이 학교를 다녔고, 유키에의 일본인 엄마 치요 역시 덕춘과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어느 날, 탄광촌에 사고가 나서 정만은 다리를 크게 다치고 만석은 강제로 본토 이송을 당한다. 1년 안에 노무자 가족을 일본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날 바닷가로 아버지를 배웅한 것이 단옥이 본 생전 만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만이 다리를 다쳐 생계가 어려워지자 유키에 가족은 사택촌에서 시내로 나간다. 치요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키에 가족이 시내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쯤 덕춘은 사택촌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유키에 가족에게 부탁하여 같이 살자고 한다. 소련의 지배 체제에 놓인 1949년, 단옥은 그토록 꿈꿔왔던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에 부푼다. 사할린에 살면서 대부분 조선말을 잊어먹거나 배우지 않는 한인들이 많았지만 단옥은 끝까지 조선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학교조차 소련 세력이 장악하면서 단옥은 교사를 할 수 없게 된다.
소설 중반은 단옥의 혼인, 정만 부부의 귀환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키에는 단옥 곁에 남으며 사할린에 정착하기로 한다. 단옥은 매 순간을 성복 대신 장녀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자신의 뿌리인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고 언젠가는 가족이 다 같이 만나서 함께 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들의 삶은 불투명하고도 불안했지만 가족과 고향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소설 후반은 조국의 배신으로 큰 상실에 빠진 한인들의 고독과 애환을 여실히 드러내며 노인이 된 단옥과 그녀의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만 먹는데 과연 단옥은 잃어버린 가족들을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너무 초조했다. 힘없는 우리나라와 무책임하고 잔혹한 일본, 권력 앞에서 모든 것을 통제한 소련.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이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하고 고된 인생이었으나, 단옥의 삶은 슬픔의 틈새 가운데서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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