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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a1377님의 서재
  • 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 15,300원 (10%850)
  • 2025-08-25
  • : 6,975

*프란시스 터빈(Francis turbine)

『가라앉는 프란시스』는 제목부터 오해를 남긴다.

사람 이름 같지만,
사실은 19세기 미국의 엔지니어 제임스 B. 프란시스가 고안한 수력 발전기 터빈의 이름이다. 그러나 작품은 기계 이야기를 하기보다, 전혀 다른 이미지로 문을 연다.

첫 문장은 강렬하다.

“물살을 타고 납작한 무언가가 떠내려오고 있다.”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한 몸, 시체의 묘사다.

‘퉁퉁 부어 살결을 보드랍지만, 관절은 굳었다.’

알고 싶지 않은 디테일까지...😱
신체의 작은 부분들이 차례로 드러나며 강물 속으로 잠겨드는 모습은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선명하고 압도적이다. 이 짧은 도입부만으로 서사의 긴장감에 사로잡히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라앉음’이라는 모티프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시작은 무섭지만, 동시에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이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듣고 싶지 않은 친구의 사생활을 억지로 듣는 것처럼 불편하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데, 알게 되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쾌함을 느끼게 하고, 그것을 막고 싶으면서도 끝내 듣고 마는 심정이 사람의 마음을 오묘하게 자극한다.

그럼에도 문체가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묘사는 마치 그림처럼 풍경과 감정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 인간의 나약함과 이중성이, 잔혹할 만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교차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일본이라는 배경인지, 아니면 갈라진 대지 속 어디쯤인지조차 혼동하게 만드는 서술은 읽는 이릏 낯선 감각으로 몰아넣는다.

가을부터 여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무엇인가가 남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규정하기 어렵다. (진짜 모르겠음)
아련하다고 하기에는 무겁고, 가볍다고 하기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답답함은 게이코의 시점에서만 서술되는 제한된 시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를 보는데 화면의 반만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소설은 끝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첫 문장에서의 물음표,
진행 중의 물음표,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물음표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유려하게 잘 읽히는게 가장 문제인 소설이다.

소설은 마치 시퍼런 필터를 낀 서정성을 가지고, 독자의 머릿속에 물음표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작전인게 틀림없다. 작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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