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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했던 문장들



1

어렸을 때는, 아니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티를 내지 못한 채 지냈었다. "걔 좀 멋있지 않아?" 누가 그렇게 물으면 내 눈에만 멋져보인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게 1단계. 그리곤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지도 없이 "내 스타일은 아니야."라고 쉽게 부정하기를 2단계. 마지막 3단계는 상대방이 인기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정말로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기. 당연한 결과이지만, 잘 될 일은 없었다.



2


행실이 나쁜 게 아니야. 무지한 소리다.

그럼 대체 뭔데요?

자유로워지겠다는 일종의 결단이지. 그건 우리 나이에도 가능한 일이란다.

십대 소년처럼 구시네요.

십대 시절에도 이러지 못했다. 그럴 엄두조차 못 냈지. 하라는 일만 하며 자랐으니까. 내 생각엔 너도 너무 그렇게 살아왔어. 나는 네가 자발적이고 추진력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함께 이탈리아에 가고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널 산으로 데려가 눈도 맞혀주고 집에 돌아오면 충만한 생활을 누리게 해줄 그런 사람 말이야.

-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中



3

켄트 하루프의 글을 읽고 생각났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뒷부분. 


네가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느꼈으면 좋겠다. 너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후회없는 삶을 살면 좋겠구나.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렴.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中



4

대체 뭐가 두려워서? 

후회나 죽음보다 두려운 게 뭐가 있다고?

아 그런 식이라면 나이를 먹고 90살 할머니가 된다면 좀 더 용기있을 수 있겠네. 어렸을 적 백문백답에서 물었던 대로,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하고 싶은 일은?"이라는 물음이 현실에 가까워질 테니까. 언제라도 죽을 지 모른다는 확신이 들면 좀 더 용감해질 수 있겠지.



5

두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연이어서 완독해버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모든 것에 잘 지루해하는 편이고 금방 질려하는 편이라서 완독 자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켄트 하루프의 글은 딱히 극적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디선가 살고있을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 수려하고 밀도있는 문장들만 아름다운 소설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



6

노인과 어린 꼬마아이의 조합은 늘 사랑스럽다. 노인은 꼬마만큼이나 순수하고, 꼬마는 노인만큼이나 용감하다. 그들이 용감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우리의 삶이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가고있다는 확신이 든다. 나이를 먹더라도 다시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나이를 먹는 일을 두렵지 않게 한다. 언제라도 돌아갈 텐트가, 다시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그 어떤 시선도 두렵지 않게 만들어준다. 


샛강을 따라 걷다 우리 텐트로 돌아오거라. 할머니와 내가 기다리고 있으마. 한번 해보렴. 조금 갔다가 돌아오면 되니까. 보니랑 함께.

-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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