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름다운 작별, 따뜻한 환영, 삶을 껴안은 마지막 이야기!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야기를 통해 살아갑니다.
가장 사적인 고백이자 가장 보편적인 위로.
《바움가트너》는 그런 소설입니다.
📚《바움가트너》는
'떠나는 자의 말, 그리고 남은 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읽고 나면 삶의 어떤 문장이 조용히 다시 쓰여지는 기분.
이별 이후에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이 소설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폴 오스터(1947–2024)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현실과 환상, 우연과 필연을 섬세하게 오가는 독특한 문체로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4 3 2 1'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문학뿐 아니라 영화, 에세이, 번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으며, ‘우연의 철학자’라 불릴 만큼 삶의 우발성과 존재의 사소한 조각들이 인생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천착해왔습니다.
또한 언어에 대한 깊은 통찰, 이야기 속 이야기, 삶의 균열과 문학의 치유력을 결합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바움가트너》 는 그가 암 투병 중 집필한 유작으로, 오스터의 문학적 사유가 가장 짙고 농밀하게 응축된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상실과 그로 인한 내면 여정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이는 폴 오스터 자신의 ‘고별사’로도 읽힙니다.
바움가트너가 문학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기억을 복기하는 존재인 만큼 이 소설은 자전적이면서도 허구적인,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선 폴 오스터 자신일 수 있습니다.
또한 ‘꿈의 힘’, ‘연결된 존재들’, ‘우연한 순간의 진실’ 같은 오스터 문학의 핵심 개념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그의 전작들에 대한 친숙함이 있다면 더 깊은 울림이 가능할 것입니다.
《바움가트너》는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가 상실을 껴안은 채 살아가는 나날 속에서, 우연히 떠오른 기억들과 마주하며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설입니다. 그 자체로 작가의 마지막 인사이며, 고요히 덧칠된 사유의 초상입니다.
삶과 죽음, 부재와 존재, 기억과 애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성에 대해 고요하지만 집요하게 탐색하는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작가의 마지막 인사이자 문학적 유언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절망으로 침잠하지 않고, 삶의 끝자락에서도 ‘꿈의 힘’을 발견하며 다시 걸어 나아가는 가능성을 조용히 노래합니다.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평범한 아침—그 시작은 까맣게 그을린 냄비 하나였습니다. 불시에 찾아온 사건은 오래도록 억눌러졌던 기억과 감정이 솟구치는 계기가 됩니다. 냄비는 타버렸지만, 기억은 타지 않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는 여전히 아내 애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 상실은 지금도 현재형으로 이어집니다.
📌“거실 맞은편의 시커메진 알루미늄 냄비를 계속 보고 있자니…”
이 소설은 단선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이 끊임없이 오갑니다. 이처럼 한 장면은 불에 그을린 냄비에서 시작되었고, 다음 장면은 갑작스레 아내와의 첫 만남으로 흐릅니다.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삶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눈물보다는
'그녀가 그립다, 그게 전부예요.'라는 담담함입니다.
그의 상실은 전형적인 슬픔과는 다릅니다. 그는 허우적거리거나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란 고통을 느끼는 것이며, 고통을 피하는 것은 살아 있음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담백한 인식은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애도의 형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스터는 📌“죽음의 입구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 상실과 부재가 오히려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통찰을 전하고자 합니다.
삶의 말미에 우리는 비로소,
덧없음과 우연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그는 허구가 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문학의 본질에 대한 신념을 고스란히 남깁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은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그 말도 안 되는 장면은 꿈처럼,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불안정하고,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고, 감정은 더욱 격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상실이고, ‘진짜’ 애도였습니다.
그 모든 모순과 허구의 조각들이 결국 한 사람의 감정적 진실을 증명했습니다.
📌“그게 상상력의 힘이야,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
이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요약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잃은 것을 다시 만나는 장소는 현실이 아닌, 이야기이며, 상상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죽음을 다룬 책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책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연결, 애도와 기억의 반복, 작가로서 허구의 힘을 믿는 태도까지, 폴 오스터는 이야기의 힘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습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음을 하나의 끝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바라봅니다. 그것은 '아무 데도 아닌 거대한 곳'일 수 있지만, 남은 이들이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연결은 이어집니다. 폴 오스터는 이야기의 힘, 꿈과 허구가 가진 힘으로 죽음과 상실의 절망을 넘어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허구가 감정의 진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연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없다면 삶은 공허합니다. 하지만 연결된 순간,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한 가치를 갖습니다. 폴 오스터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듯, 바움가트너의 목소리를 통해 그 사실을 되새깁니다.
삶은 결국 타인과의 연결입니다.
사랑이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엉켜’ 살아가는 것.
폴 오스터는 그 ‘엉켜 있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직면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기에 가능한 상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려는 시도.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강한 힘입니다.
삶은 혼자가 아니며, 상실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바움가트너는 천천히 배워갑니다. 주디스라는 새로운 사랑이 그의 삶에 들어오고, 아내 애나의 글을 연구하려는 젊은 학자 비어트릭스가 찾아오면서 그는 다시금 ‘관계’의 의미를 회복합니다.
슬픔은 여전히 있고, 애나는 여전히 죽어 있지만, 바움가트너는 마침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은 자를 삶으로 계속 데려오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산 자의 세계로 돌아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오스터는 ‘기억’을 지나간 시간의 사진첩처럼 회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기억은 여전히 숨쉬는 실체입니다.
아내와의 나날, 어린 시절의 피크닉, 우연한 만남,
덧없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현재를 가득 채웁니다.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금세 사라지고,
사소한 장면만 끈질기게 남는 걸까?
이 물음은 모든 독자의 삶에도 닿아 있습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음을 앞둔 한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러브레터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떠난 자리에도 이야기가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사랑했던 이들을 남겨 둔 이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성숙한 문장입니다.
짧지만 길고, 작지만 깊은 이 소설은 단언컨대,
폴 오스터의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빛나는 유작입니다.
죽음 너머를 향해 질문을 던지며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맞아, 그게 삶이야.”
슬픔은 여전히 있지만, 그 끝에서 우리는 살아남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결국, 삶이란 쓰고 또 쓰는 이야기이며,
죽음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이야말로 오스터가 생의 마지막에 전하는 위로입니다.
💭그리움은 항상 같은 모양이 아닙니다.
어떤 날은 바닥에 남은 커피 찌꺼기에서,
어떤 날은 구름 한 조각에서 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움가트너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 안에 깃든 삶의 ‘편린’들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이 순간을 기억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그것은 자신의 생을 한 조각의 빛으로 봉인하려는 한 인간의 간절함입니다. 이 소설을 읽은 당신에게, 그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바움가트너》는 깊은 고통 속에서도 사람은 계속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을 증명합니다.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모두 우주의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그러한 연결의 끝자락에서
우리 모두에게 다정하게 손을 뻗는 ‘인사’입니다.
작별을 고하며, 여전히 삶이 계속된다고 말하는 듯.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가 ‘남긴’ 소설이 아니라,
우리에게 ‘건넨’ 소설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삶을 응시하며 글을 썼고,
그 안에 깊은 슬픔과 함께 따뜻한 희망도 함께 담았습니다.
이 책은 그 흔치 않은 이야기의 전언이자,
죽음 앞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에 대한 증거입니다.
끝의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독자는
오히려 삶을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슬픔은 끝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터널이며,
기억은 잃어버린 세계를 되찾는 지도이기도 합니다.
폴 오스터는 마지막 책에서도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그는 죽음을 말하면서도 생을 바라보고,
상실을 다루면서도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 작별인가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 누군가의 바움가트너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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