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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 에크하르트 톨레
  • 21,600원 (10%1,200)
  • 2013-08-15
  • : 24,848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에크라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이 책은 작년에 아빠의 친구가 추천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당시 구입해 놓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던 책이란다. 그런데 최근에 신간 코너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 하나 있었어. <붙잡지 않는 삶>이란 책인데, 그 책을 살펴보니 지은이가 에크하르트 톨레더구나. 그래서 <붙잡지 않는 삶>이라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야기가 이어지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먼저 출간된 책부터 읽는 게 낫겠다 싶었지.

지은이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번에 처음 들어본 사람인데, 지은이 소개를 보니 달라이 라마, 틱닛한과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라고 써 있었어. 달라이 라마와 틱닛한은 아빠도 잘 알고 그 분들 책도 여러 권 읽어 본 만큼 꽤나 유명한 사람인데 그들과 대등한 위치라고? 너무 부풀린 소개 아닌가 싶었는데, 아빠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보던 엄마가 에크하르트 톨레를 어떻게 알고 이 책을 읽냐고 물어 보더라구… 엄마는 에크하르트 톨레를 이미 알고 계시더구나. 하기야 엄마는 오쇼 라즈니쉬를 엄청 좋아하시니 명상가로 유명한 에크하르트 톨레를 알고 계신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겠구나. 엄마도 알고 계신 사람이라면 달라이 라마와 틱닛한과 견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까?

이 책의 옮긴이는 아빠도 좋아하는 류시화 작가님이란다. 그래서 이 책에 더욱 호감이 갔어. 옮긴이의 글을 보니 오래 전에 번역 출간한 적이 있었대.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절판시키고 제대로 심혈을 기울여 재번역하여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오랜만에 마음을 치유하고 명상을 생각하게 하는 책을 읽었는데, 소문난대로 책이 너무 좋았단다. 기대 이상이었어. 책을 다 읽고 나서 지은이 에크하르트 톨레를 달라이 라마와 틱닛한과 대등한 위치로 인정할만하고 생각했어. 최소한 아빠의 기준에서는…

 

1.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왜냐하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모든 내용이 아빠의 마음을 흔들었거든. 지구의 역사부터 시작하면서 인간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인류의 현재 상태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집착과 탐욕으로 가득 차버린 에고를 품고 있는 아빠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 아무리 욕심을 갖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주 깊게 각인되어 있는지 욕심을 버리지 싶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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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어떻게 하면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결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물질에 대한 집착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그때까지는 자신이 물질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어떤 것을 잃거나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즉 자신이 그것에 동일화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다. 잃어버릴까 봐 화를 내거나 불안해한다면 당신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물질과 동일화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면 그 동일화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집착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그 알아차림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것이 의식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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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욕심과 집착은 자신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너희들에게까지 전가된단다. 지은이는 아빠를 비롯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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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3)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무엇이 너를 위해 가장 좋은지 내가 잘 안다’라는 믿음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커 갈수록 그것은 점점 더 진실이 아니게 된다. 아이의 삶이 어떻게 펼쳐져야만 하는가에 대해 기대가 크면 클수록, 당신은 아이를 위해 이 순간에 존재하기보다는 당신의 생각 속에 더 많이 사로잡혀 있게 된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아이도 언젠가는 실수를 저지를 것이고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사실 그것들은 당신의 관점에서 볼 때만 실수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실수로 보여도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과 경험일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도움과 조전은 주어야 하지만, 특히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는 때때로 실수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고통을 겪게 해주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고통은 뜻밖에 찾아올 수도 있고, 지신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로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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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착과 욕망에 물든 에고의 현 상태를 파악하고 그런 에고를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간단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는가? 고통체를 알아보면서 과거를 내려놓는 것을 해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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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과거의 사건들은 기억으로 당신 안에서 계속 살아가지만, 그 기억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그뿐 아니라 기억 덕분에 과거로부터, 그리고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기억, 즉 과거에 대한 생각에 당신이 완전이 지배되고 그것이 짐으로 바뀔 때 비로소 기억이 문제가 된다. 또한 그것이 당신의 자아의식의 일부가 될 때,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진 성격이 당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당신의 기억들에 자아의식의 옷이 입혀지고,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나’가 되어 버린다. 이 ‘작은 나’는 환상이며, 시간을 초월하고 형상을 초월한 ‘현존’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흐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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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체에서 해방하여 진정한 자신으로 진화하는 단계를 거쳐, 신인류의 등장과 새로운 지구를 희망하는 글로 책은 맺음을 한단다. 아빠가 섣불리 정리해서 이야기하다가는 책의 소중한 가치가 퇴색될까 봐 아주 간단히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이 책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너희들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

아빠가 책을 읽고 나면 키보드롤 다시 두들기면서 발췌를 하잖아. 그런데 이 책은 좋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아빠가 책을 읽고 난 다음 발췌하는데 좀 애를 먹었단다. 시간이 한참 걸렸어. 그래도 다시 한번 읽으면서 두들기다 보니 머릿속에 조금이나마 더 새겨지는 것 같았어. 아빠의 지워지지 않는 집착과 욕심도 살짝 흐릿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아쉬움이 있었어.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하기로 했단다. 이 책 전체를 필사해보겠다고 생각했어. 워낙 시간이 없어서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그보다 더 걸릴지 모르겠지만, 명상한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필사를 해보려고 한단다. 너무 큰 소리를 쳐서 중도 포기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구나.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더욱 이 책의 내용을 한 자 한 자 적으면 마음이 평온해 질 것 같구나. 아빠의 필사 도전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억 1천 4백만 년 전 어느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이 바로 그중 한 사람이다.


말은 실체를 인간 마음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축소시킨다. 언어는 성대에 의해 생성되는 다섯 개의 기본적인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아, 에, 이, 오, 우’의 다섯 가지 모음이다. 나머지 소리들은 공기 압력 조절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 스, 프’ 등의 자음들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음의 몇 가지 조합만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아니면 한 그루의 나무나 돌멩이 하나에 대해서라도 그 깊은 곳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가?- P54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만큼 에고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없다. 옳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 의견, 판단, 이야기 등과 같은 정신적 입장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옳기 위해서는 당연히 틀린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에고는 옳기 위해 누군가를 틀리게 만들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꿔 말해, 자신의 더 강한 자아의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틀리게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상황도 불만과 반응을 통해 틀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주장은,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 자신을 상상 속에서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에고가 갈망하는 것이 그 우월감이며, 그것을 통해 에고는 자신을 강화시킨다.- P101
소심함은 종종 눈에 띄게 부정적인 자아의식, 즉 자신에게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다는 믿음과 함께한다. 자기 자신을 이러저러하게 보는 관념 속 자아의식은 ‘내가 최고야.’라는 식의 두드러지게 긍정적이든, 아니면 ‘나는 형편없어.’라는 식의 부정적이든, 어느 쪽이든 에고이다. 모든 긍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그럼에도 아직 충분히 좋지 않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모든 부정적인 자아의식 뒤에는 최고가 되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P125
어떻게 하면 지금 평화로울 수 있는가?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은 삶의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 장이다. 삶의 놀이는 다른 곳에서 펼쳐질 수 없다.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면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라.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삶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를, 삶의 예술에 대한 비밀, 모든 성공과 행복의 비밀을 전하는 세 단어가 있다. ‘삶과 하나가 되기’이다.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은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당신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삶은 춤추는 자이고, 당신은 그 춤이다.- P159
인기 있는 대중 신문들은 뉴스를 팔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말해 고통체의 먹이를 파는 것에 중점을 둔다. 커다란 활자의 헤드라인에서 폭력과 범죄의 단어들이 난무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영국의 황색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이 점에서 탁월하다. 뉴스를 싣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부채질하는 편이 신문 판매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그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을 포함한 뉴스 매체 전체가 부정적인 뉴스를 먹고 사는 경향이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 될수록 아나운서와 사회자는 더 흥분하고, 언론 매체 자체가 종종 부정적인 흥분을 부채질한다. 고통체들은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P204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내용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의 내린다. 지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내용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물이 관심을 완전히 차지해 버리며, 그들이 동일화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인 삶’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혹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용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 상태와 감정 상태는 물론 나이, 건강, 관계, 경제력, 일, 생활환경 등을. 사건들, 즉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삶의 외부 환경과 마음의 환경, 당신의 과거와 미래 모두가 이 내용물의 영역에 속한다.- P250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보면 무의식적이 될 뿐 아니라 수동적이 되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그러므로 무작위적으로 시청하는 대신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기 몸 안의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 좋다. 혹은 때로는 자신의 호흡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각이 완전히 텔레비전에 점령되지 않도록 때때로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청각이 압도되지 않도록 음량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하지 않는다. 상업 광고시간에는 음을 소거한다. 또한 텔레비전을 끄자마자 잠들지 않는 것이 좋다. 켜 놓은 채 자는 것은 더 나쁘다.- P294
자연은 무의식중에 전체와 하나가 된 상태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2004년 쓰나미 재난(3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동남아시아의 지진 해일)에서도 야생동물에게는 사실상 피해가 없었던 이유가 그것입니다. 인간들보다는 전체성과 더 많이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들은 보거나 듣기 훨씬 전에 쓰나미의 접근을 감지할 수 있었고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러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마음이 실체를 분해하는 방식입니다. 반면에 자연은 전체와의 무의식적인 하나됨 속에서 살아갑니다. 전체와 의식적으로 하나가 되고, 우주의 지성과 의식적인 일치를 이룸으로써 이 세상 속으로 새로운 차원을 가져오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목적이자 운명입니다. - P349
미래의 사건으로서의 깨어남은 아무 의미가 없다. 깨어남은 ‘현존’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하늘, 즉 깨어난 의식은 미래에 성취해야 할 상태가 아니다.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시의 머릿속에 있는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하느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 너희 안에 있다."-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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