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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아메리고
  • 슈테판 츠바이크
  • 15,030원 (10%830)
  • 2025-06-19
  • : 625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신간 소식을 들었단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빠를 비롯하여 많은 팬들이 계셔서 그런지,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숨겨진 작품들이 하나 둘 출간되어 아빠 같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구나. 이번에 출간된 책은 <아메리고>라는 책인데, 책 두께가 무척 얇은데도 가격은 만만치 않더구나. 그리고 같은 제목의 책이 두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더구나. 오래 전 책인데 우리나라의 다른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이 되다니… <아메리고>라는 책이 저작권이 풀리는 시점이었나? 싶었단다. 그 말이 맞다면 저작권료도 없을 텐데,  얇은 두께에 비해 책 가격은 왜 높게 책정한 거야? 츠바이크의 팬이라고 자처했는데, 이를 시험하는 것인가? 사실 조금은 망설였지만 곧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단다.

츠바이크의 글이라면 재미는 보장되어 있을 테고, 책 두께가 얇더라도 그 내용이 주는 중량감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긴 했는데, 그 동안 밀린 독서편지 때문에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책 이야기를 하는구나.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 책도 재미있게 쭉 읽혔고, 대충 알고 있었던 아메리카의 어원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단다. 그리고 우연과 오해의 역사가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역사는 되는 현장을 함께 했었단다.

책 제목 <아메리고>는 사람 이름이란다. 이 사람의 이름, 무척 익숙하지 않니? 그래 맞아..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란다. 그런 것치고 아메리고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단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알듯이 콜럼버스란다. 그런데 왜 그 신대륙의 이름을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지 않고, 아메리고라는 낯선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을까? 그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단다. 스토리 전개도 흥미진진하여 재미있게 읽는데, 아빠의 까마귀 같은 기억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읽다가 잠깐 멈추고 메모를 하면서 읽었단다. 아빠가 그 메모를 바탕으로 간추려 이야기해볼게. 메모와 아빠의 기억이 잘못되어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어도 양해바람.

 

1.

아메리고 베스푸치. 이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본토나 그가 태어난 유럽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구나. 남겨진 아메리고에 대한 기록은 40~50페이지가 전부라는구나. 아메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몇 백 년 앞선 유럽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서기 1000년 전후 서양은 중세 암흑기였단다. 종말론이 유행하기도 했었어. 그러다가 1100년대에서 1200년대를 거치면서 십자군 원정이 있었어. 9차까지 이어지는 십자군 원정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단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어. 동양의 문화, 물건들을 접하고, 그곳에서는 책도 많고 학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유럽에서는 동양처럼 대학을 세우고 학문을 중시는 풍토가 생겨나게 되었단다.

1300년대에는 너희들도 익히 들어본 르네상스가 서서히 꽃피우기 시작하면서, 화려했던 그리스 로마 문화의 복원에 힘쓰기 시작했단다. 단테, 조토, 베이컨 등 창조적인 인물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 당시 사람들은 공부를 하다 보니 호기심이 점점 커졌고, 넓디넓은 바다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졌어. 그 때까지 그들에게 있어 세상의 끝은 지브롤터 해협이었거든. 1289년 마르코폴로가 30년 동안 동방을 탐험하고 돌아와서 그가 경험한 것을 책으로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단다. 그러면서 동양을 동경하는 풍조가 생겨났어. 향신료도 유럽에 전래되기 시작했는데, 1400년대에는 향신료의 나라 인도를 가는 것이 유럽 사람들의 꿈이었단다.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인도로 가는 방법에 대해 철저히 연구를 했고, 항해학교, 관측소, 지도제작소를 세워서 사람들을 지원했어. 그의 이런 지원은 반세기가 지나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단다. 1450년 포르투갈의 항해자들은 서아프리카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탐험을 시작했어. 그러면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땅들을 차지해갔단다. 포르투갈의 마르톨로메우 디아스는 1486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뱃머리를 틀었단다. 그리고 그 항해의 마무리는 우리도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바스코 다 가마가 이루어냈단다.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를 찍고 다시 포르투갈에 복귀를 했어. 1499년이었다. 그렇게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를 다녀오고 있을 때, 스페인 깃발을 달고 대서양을 향해 당시에는 무모해 보이는 항해를 하는 있었으니, 그가 바로 콜럼버스였단다. 1492년이었지. 그리고 콜럼버스는 따른 시간에 인도 땅에 도착했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인도를 다녀왔다고 선언했단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착각을 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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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콜럼버스는 수천 개의 섬을 혼자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낙원에서 발원하는 강물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인도의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 모든 섬들과 이 특이한 땅들이 어째서 고대와 아랍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는 어찌해서 그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가 말한 지팡구와 차이툰은 콜럼버스 제독이 발견한 땅과 얼마나 다른가? 그 모든 것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며 신비로 가득 차 있어서, 서쪽에 위치한 이 섬들에 대해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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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에는 줄줄이 바다로 향했단다. 1493년 콜럼버스는 1500년 대규모 인력을 데리고 다시 대서양을 향한단다. 1500년 이후에는 본격적인 신대륙 정복 경쟁이 시작되었단다. 이렇게 신대륙 진출이 활발해지던 1503년 4~6장짜리 <신세계>라는 팸플릿이 퍼지기 시작했어. 이 팸플릿의 제목 <신세계>는 바로 대서양 너머의 대륙을 이야기하는데, 그 대륙을 처음으로 신세계라고 부르게 된 팸플릿이었단다. 이 팸플릿은 피렌체 출신 알베리쿠스 베르푸치우스라는 라틴식 이름을 가진 상인이 쓴 소책자란다. 원래는 매디치 가문에 보낸 편지로, 지금까지의 진행된 항해들을 잘 정리한 글이었단다.

지은이는 1501년 포르투갈 왕의 명을 받고 새로운 대륙에 다녀왔고, 그 경험을 정리하여 적으면서 다른 항해들에 대해서도 기술한 내용이었어. 그러면서 새로운 대륙의 사람들, 그곳의 모습에 대한 묘사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 모습을 지상낙원처럼 그려져서 많은 사람들은 이 팸플릿을 읽으면서 꿈을 꾸기 시작했지. 자신도 그곳에 가고 싶다고 말이야. 이 팸플릿이 유행하게 되자, 2~3년 뒤 팸플릿은 그 간의 항해 경험을 추가하여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제대로 된 이름으로 16장 짜리 책자로 출간하였단다. 그리고 그가 쓴 이 책자는 다른 항해사들이 쓴 글들과 함께 엮여서 좀 두꺼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어. 일종의 공저라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이 공동저자의 책 제목에 베스푸치의 이름만 포함되었대. 지은이 이름에는 공동저자의 이름이 다 있을지 모르지만, 책 제목에는 떡하니 베스푸치의 이름이 포함되었다는 거지. 그렇게 되자, 사람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베스푸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대. 당시 통신 기술이 그리 발달한 것도 아니니, 사람들의 입소문이 더 큰 역할을 했겠지.

 

2.

그리고 지은이 츠바이크는 갑자기 프랑스 생디에라는 작은 도시의 이야기를 한단다. 생디에라는 도시는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단다. 당시 생디에는 르네 2세라는 사람이 다스리고 있었단다. 르네 2세는 출판업을 후원하기도 했는데, 르네 2세의 후원을 받은 보트랭 뤼드와 고티에 뤼가 1507년, 생디에에 조그마한 출판사를 하나 개업했단다. 그들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지리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와 협업을 했어. 그들은 신대륙 발견에 관한 책자를 하나 출간했는데, 르네 2세가 자신이 베스푸치와 친분이 있다면서, 베스푸치의 책자도 그 책에 포함시켰단다. 그리고 그 책에는 지도도 포함시켰는데, 오랜 과거부터 시작하여 당시에도 가장 유명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신세계를 추가한 지도였단다.

이 책에 널리 유명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는 신세계를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적혀 있었단다. 그리고 이 책에 포함된 지도의 신세계의 이름을 아메리쿠스의 땅이라는 뜻의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적었단다. 그러니까 프랑스 생디에라는 작은 도시에서 만든 책에 처음으로 신대륙의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한 것이란다. 그런데 당시 지도의 신대륙은 오늘날 브라질 일부 지역만 표시된 넓지 않은 땅에 해당하는 지역만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렀어. 그 이후 이후 만들어진 지도에는 그 땅을 아메리카로 적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처음에는 브라질의 일부의 작은 땅만 아메리카로 불렀는데, 점점 개척되면서 아메리카로 부르는 땅이 넓어졌고, 15년 뒤에는 오늘날 남아메리카 전체를 아메리카로 불렀어. 당시에는 지금의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다른 대륙이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남아메리카만 아메리카로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대륙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대. 그래서 한 개의 대륙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으니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대륙의 이름이 아메리카로 정해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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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8)

지구상에서 북아메리카는 여전히 남아메리카와는 별개의 세계로 존재했다. 당시 사람들의 완고한 믿음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의 일부라고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상상 속에 해협으로 아메리고의 대륙과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들은 이 대륙이 북쪽 빙해에서 남쪽 빙해까지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땅임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확인하였고, 이 대륙에는 단 하나의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오류와 진실 사이에서 탄생한 이 무적의 단어가 그 불멸의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힘차게 일어섰다. 이미 1515년에 뉘른베르크의 지리학자 요하네스 쉐너는 자신이 제작한 지구의에 덧붙인 글에서 ‘아메리카 또는 아메리겜’을 신세계인 네 번째 대륙으로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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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지도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적혔는데, 이를 거부한 이가 있었으니, 최초로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인 발트제뮐러라고 하는구나.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은이 츠바이크가 추측하길 발트제뮐러가 신세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아닌가 하고 추측했단다. 여기까지가 신대륙의 이름이 어쩌다 아메리카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란다. 하지만 여기서 책은 끝나는 것이 아니란다. 아메리카의 이름에 대한 논쟁은 또다시 시작한단다.

콜럼버스와 베스푸치는 생전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대. 하지만 그들은 죽고 난 후 후세에 의해 경쟁 관계가 되었단다. 처음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콜럼버스의 완벽한 패배였단다. 더욱이 신대륙을 처음 발견하고 돌아와서는 인도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결론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고, 나중에는 이것으로 사기꾼으로 몰리면서 명성을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에게 잊혀져 갔단다. 이와 반대로 베스푸치의 명성은 나날이 올라갔단다.

16세기 세르베투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베스푸치가 과대평가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했단다. 베스푸치는 상인에 불과하다고 했어. 그리고 콜럼버스가 무시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신대륙에서 주교로 있었던 라스 카사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폭로하는 <인디오의 역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어. 그는 1502년 18살 나이에 신대륙에 건너가 73세까지 신대륙에서 지낸, 소위 신대륙 통이었어. 그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본토에도 먼저 도착했다고 했어. 책자에는 베스푸치가 1497년에 신대륙 본토에 도착했다고 써 있지만, 실제로는 1499년에 도착한 것이라고 했어. 이렇게 베스푸치를 비판하며 콜럼버스를 재평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콜럼버스의 명예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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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콜럼버스라는 한 인물이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후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부당한 처우를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는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그를 향한 모든 경멸과 그의 이미지에 드리워졌던 모든 그림자는 깨끗이 지워졌다. 사람들은 그의 형편없었던 통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의 생애를 이상적으로 그려냈다. 그가 겪었던 어려움은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선원들의 모반을 제압하고 배를 끝까지 이끌었던 일, 한 악당의 음모로 쇠사슬에 묶여 고향으로 압송된 일, 굶주림에 처한 자식과 함께 라비다 수도원에 숨었던 일 등 이 모든 사건들은 이전에는 그의 업적을 칭송할 때 별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끊임없는 영웅화 욕구 덕분에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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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베스푸치가 쓴 것으로 알려진 항해서도 거짓일 수 있다고 제기되었어. 그것은 코라도 마그나기 교수가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근거는 베스푸치가 쓴 <신세계>와 <내 번의 항해>의 내용과 진짜로 밝혀진 베스푸치의 세 통의 편지와 상충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출판업자들이 베스푸치의 허락없이 그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단다. 그렇다면 베스푸치는 왜 침묵했을까?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 보면… 베스푸치는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도 아니고, 책을 저술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상인이었을 확률이 높단다. 우연과 착오와 착각 등에 의해 그의 이름으로 신대륙의 이름이 정해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신대륙의 이름을 바꿀 수도 없는 법.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를 꿈꾸는 아메리카의 이름을 평범한 시민의 이름으로 따온 것이 더 맞지 않냐고 말이야. 맑고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그 이름, ‘아메리카’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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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는 자신의 세례명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 이름은 올곧고 용감한 한 남자의 이름이다. 그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세 차례에 걸쳐 조그마한 배를 타고, 아직 탐험되지 않은 대양을 건너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 역시 시대의 모험과 위험 속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수백 명의 ‘이름 없는 선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민주주의 국가에 잘 어울리는 이름은 왕이나 정복자의 이름이 아니라 이름없이 용감했던, 그런 평범한 사람이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는 서인도라든가 뉴잉글랜드, 뉴스페인 또는 성스러운 십자가의 나라 같은 이름보다 분명히 더 공정한 명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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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은 얇지만, 담고 있는 내용들이 재미있고 알려주고 싶은 내용들이 많아서, 페이지에 비해 오늘 독서편지의 내용이 길어진 듯 하구나. 문득 유럽 대륙은 왜 유럽인지, 아시아 대륙은 왜 아시아인지, 아프리카 대륙은 왜 아프리카인지 궁금하구나.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이번 책도 실망시키지 않은 슈테판 츠바이크… 가끔씩 그가 남기고 간 책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아메리카 대륙은 누구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책의 끝 문장: 맑고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그 이름, ‘아메리카’를 말이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에 열광하게 되면 그 열망을 한 마디 환호성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연의 바람이 불현듯 하나의 이름을 던져준 행운의 날,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울림 좋고 날개가 돋친 듯한 그 낱말을 서슴없이 받아들여 새로 발견한 세계를 아메리카라는 새롭고 영원한 이름으로 맞이했다.- P13
1200년,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묘를 되찾았다가 다시 빼앗겼다. 순례는 헛된 것이었다. 아니다. 헛되지만은 않았다. 이 원정을 통해 유럽은 비로소 깨어났기 때문이다. 유럽은 스스로의 힘을 깨닫고 용기를 시험했으며,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하늘 아래 다른 땅, 다른 열매, 다른 물건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 다른 풍속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놀라움과 부끄러움 속에서 기사들과 시종들, 그리고 농부들은 자신들이 좁고 답답한 서양의 구석에서 얼마나 어리석게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반면에 사라센인들은 얼마나 풍요롭고 세련되게, 그리고 호화롭게 살아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P22
베스푸치는 위대한 발견자인 콜럼버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냈다.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앞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게 될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대륙의 남쪽 부분이 독립된 새로운 땅임을 정확히 인지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스푸치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발견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발견이나 발명은 단지 그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의미와 영향을 인식한 사람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탐험과 발견이라는 공적을 세웠다면, 베스푸치는 앞서 언급한 선언을 통해 콜럼버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라는 공적을 세웠다. 그는 앞선 사람이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하며 발견한 것을, 마치 꿈의 해몽가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P62
학자들의 세계에서 베스푸치가 이토록 엄청난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출간한 매우 얇고 신뢰성이 다소 의심스러운 두 권의 책들이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부여한 것은 무엇보다도 <지리학 입문>이라는 책이었다. 그러한 책을 최초로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베스푸치는 행동보다 말을 중시하는 학자들에 의해 서슴없이 신대륙의 발견자로 찬양받게 되었다. 지리학자인 쇼녀는 두 사람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으며 이렇게 말했다.
"콜럼버스는 단지 몇몇 섬만을 발견했을 뿐이고, 베스푸치는 진정한 신세계를 발견했다."
- P113
4세기에 걸쳐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를 던져준 이 남자는 정작 파란도 위대함도 없이, 소외된 채 조용히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베스푸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세계의 영역을 넓힌 사람도 아니었다. 위대한 저술가도 아니었고,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위대한 학자도, 심오한 철학자도, 천문학자도 아니었으며 코페르니쿠스나 튀코 브라헤와 같은 인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를 위대한 항해자나 탐험가의 제일선에 놓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라도 모른다. 불운한 운명 탓에 어느 순간에도 주도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쥐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나 마젤란처럼 함대를 지휘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주역이 아닌 조연에 머물렀고, 늘 다른 이들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P183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은 발견 자체가 아니라 발견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그것이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단 하나의 업적이 그의 삶과 이름에 영원히 결부된 것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행위를 이야기하고 설명한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해낸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종종 아주 작은 계기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는 것이다. 종종 역사는 평범한 인물에게 불멸의 업적을 안겨주고, 진정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던져버렸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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