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00)
발터 역시 아버지만큼이나 애국자였지만 독일이 현대화되고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도 조국이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이룬 업적, 근면하고
능률적인 독일 국민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발터는 독일이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분방한 미국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교활한 영국인들로부터 외교를, 유행을 선도하는 프랑스인들로부터는 우아한 삶의 기술을 배워야 했다.
(265-266)
이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칠일 전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사건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 발터는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하긴 보스니아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다들 황태자가 암살당한 일에 놀라긴 했지만, 그
일이 세계 전체에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약간 당황한 정도였다.
발터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암살이 어떤
징조인지 정확히 알았다. 이번 사건으로 독일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고, 이런 위험한 순간 조국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발터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었다.
(275)
내 운명은 두 군에 달렸군. 발터는 생각했다. 러시아의 차르와 오스트리아의 황제. 한쪽은 어리석었고 다른 한쪽은
늙어빠졌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드와 나,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유럽인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이것이 군주제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고 뭔가!
(376)
세계 대부분의 의회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양원제였다. 피츠는
지위가 높은 귀족과 주교,, 고위 판사로 이루어진 상원에 속했다. 하원은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하원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원과 하원 의회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지은 빅토리안
고딕 양식의 웨스트민스터 공전에 모여 회의를 했다. 시계탑의 시계는 빅벤이라 불렸는데, 피츠는 빅벤이 원래 탑 안에 있는 커다란 종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꼬집길 좋아했다.
(410)
지난 이 주간 그런 일이 반복되었죠. 모드는 절망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나라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이 묵살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뒤로 물러설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세르비아를 공격했다. 러시아는 협상하는 대신 동원령을 내렸다. 독일은 국제평화회담에 나와 문제를 해결하길 거부했다. 프랑스는 중립으로
남을 기회를 얻었지만 일축했다. 그리고 이제 영국은 방관자로 남을 수도 있는 쉬운 길을 두고 전쟁으로
향하는 대열에 합류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