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insmile














(3)

세계경제는 축소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건 우리가 어떤 재주를 부려도 피할 수 없는 물리적 현실이다. 모건의 분석은 주로 화석연료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설령 재생가능에너지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사정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재생에너지는 가장 질이 좋지 않은 화석에너지보다도 에너지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같은 단위의 에너지를 생산한다고 했을 때 석탄, 석유보다 10배나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탈탄소와 탈성장은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앞으로 도래할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탈탄소와 탈성장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34)

시장에 맡기면 자본에 예속된다. 정부에 맡기면 독재에 신음한다. 현대사회가 채택했던 두 가지 굵직한 시스템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벨록은 그 답은 ‘분산’에서 찾았다. 시장주의는 생산수단을 자본가에서 맡겼다. 사회주의는 그 생산수단을 독재권력의 손에 쥐어줬다. 벨록은 자본가와 권력이 독점했던 농지나 상점, 기술, 기계를 가정과 지역 단위로 분산해서 소유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벨록은 이를 ‘작은 소유자들의 나라’라고 불렀다.


(45-46)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 해 전의 일인데, ‘아벤티스’라는 제약회사(현재는 사노피아벤티스)가 ‘에플로니틴’이라는 화합물을 개발했습니다. 이 물질은 아프리카 수면병을 일으키는 병원충(트리파노소마)을 죽일 수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아프리카 수면병을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심신을 쇠약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기력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 70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약회사가 에플로니틴으로 수면병 약을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우선 시장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봤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7000명만 명이나 되지만 이 약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구매력)이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시장수요’가 없으니 그 약을 생산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그럼 자신들이 직접 약을 생산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할 테니까, 에플로니틴의 지식재산권을 달라고 요청했어요. 아벤티스는 거절했습니다. 이미 그 화합물의 특허권을 ‘브리스톨마이어스퀴브’라는 화장품 회사에 넘겨준 뒤였거든요. 에플로니틴은 여성들의 얼굴에 난 털을 없애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적 필요를 완전히 무시한 채, 부유한 여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화장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 바로 정확히 이것이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47)

특허(지식재산권)는 독점입니다. 우리의 세금을 사용하면서 정부가 정보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정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통산 어떤 의료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할 때 평균적으로 특허권 50개 정도를 침해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그 기술은 임상에서 사용될 수 없고 연구하는 데도 이용될 수 없습니다. 뉴턴은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본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기술이든 이미 존재하는 정보(지식)로부터 발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놓으면 연구는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허제도는 인류가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54)

비슷한 예가 실제로 있어요. 인제 양양군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례인데, 예산의 한 90%를 양양군이 대고 10% 정도를 강원도에서 대거든요. 이런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기 전에는 케이블카 건설을 지지하는 양양군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전체 예산의 일부이긴 해도 양양군의 돈으로 케이블카가 만들어진다고 하니까 생각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케이블카가 사실은 완전히 적자 사업이거든요. 케이블카에 쓸 예산 1,500~1,800억 원으로 양양군에서 다른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 생각이 좀 바뀌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양양군수가 구속되기도 했고, 다른 영향도 있겠지요.


(72)

요즘 우리는 ‘탄소중립’이라든지 ‘에너지전환’이라는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지요. 이제 기업들도 모두 생산공정에서 탄소중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에너지전환’을 한다고 하면서도 세계경제는 석유도, 석탄도 갈수록 더 많이 태우고 있어요. 천연가스 수요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목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하지만, 종래의 에너지원들에 더해서 추가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현재 전 세계 에너지믹스(전력원 구성 비율)의 80% 이상이 화석연료입니다. 목재에서 얻고 있는 전력도 핵발전의 2배나 됩니다.


(75)

그렇습니다. 물질이 아닌 기술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착시가 일어난 거예요. 증기기관을 버리고 디젤엔진으로 바꾼 ‘전환’은 기술적 변화일 뿐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전환이 아니지요. 석탄은 디젤기관이 상용화된 뒤에도 오히려 더 많이 소비되었습니다. 기술의 경우에는 새로운 것이 개발되면 옛것은 쓸모가 없어질 수 있지만, 원자재의 원료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팽창해왔습니다. 이건 중요한 사실이에요. 물질적 역사는 한마디로 확장의 역사입니다. 모든 원자재 사용량이 증가해왔고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원자재의 소비가 줄어든 사례는 (어떤 이유에서든) 사용이 금지되었을 때뿐입니다.


(82)

탄소포획저장 기술은 탄소를 흡수하면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것이고, 요즘 이야기하는 바이오에너지 탄소포획저장 기술이란 바이오매스를 태우고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땅속에 저장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 생산되는 에너지보다 투입되는 에너지가 더 많고,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친 짓으로 여겨졌습니다. 1980~1990년에는 전망 있는 기술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IPCC도 2001년 보고서에서는 탄소포획저장 기술에 의한 발전(發電)은 경제성이 없다고 했어요.


(101)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크게 퇴행하고 있다. 두 개의 큰 적대적 정당과 진영이 서로 상대 진영을 혐오하는 적대정치에 빠져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시민에 의해 저지된 후에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궁정쿠데타에 가까운 그 계엄을 지지하는 비율이 낮지 않았고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부르며 망국적 선동을 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한 연구는 한국에서 이념적으로 극우인 사람들이 20%에 이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퇴행적 정치와 극우적 선동이 난무하는 적대정치 상황에서는 서로 상대 진영이 주도한 정치적 의사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 정책, 당선자의 존재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103)

시민의회가 구성되면 우선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보는 적대정치에서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인정정치로 전환하도록 관련법들로부터 개정할 필요가 있다. 정치의 기득권세력인 거대 양당의 특권을 없애고, 실질적인 다당제를 보장하여 양당의 적대정치를 청산하고, 모든 정치지망생이 국민 앞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당법, 국회법, 선거법 등 정치 관련법들을 개정해야 한다. 이 개정안들을 시민의회에서 발의하고 국민투표에 회부하면 국민주권 실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고 제한 없이 국민발안, 국민투표를 요청하고 실시하는 주권적 권리를 확보한다면 한국 정치를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다.


(112-113)

모든 계획이 규제의 성격을 띠고 하향식으로 집행되어, 중앙이나 계획권을 가진 쪽이 주도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농촌, 특히 대도시 주변의 농촌지역들이 오늘날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오염을 일으키는 산업시설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는, 의사결정권을 중앙과 정부가 독점하고 피해를 입는 당사자인 주민들은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공모와 지원으로 진행되는 많은 지역개발사업도 주민의 필요와 요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이 필요한 지역개발사업도 주민의 필요와 요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이 필요한 지방정부와 기업들의 욕망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131)

강매역

- 류근

강매역은 아득했다

봄과 가을 사이에 있었다

새들과 맨드라미가 와서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할 일도 없고 한 일도 없이 배가 고파지면

나는 강매역 개찰구에 서 있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아득히 논밭 사이를 건너 강매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백마나 송추쯤에 내려서

다시 강매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강매역은 아득했다

새들과 맨드라미와 내가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일도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138)

프란치스코를 이해하는 핵심어 ‘가난’의 다의적이다. 먼저 가난은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화의 결핍 상태를 뜻한다. 이 가난은 생명 유지와 성장을 저해하며 비인간화와 죽음을 초래한다. 있어서는 안될, 극복해야 할 일종의 ‘약’이다. 이 가난의 반대는 생명을 지속하고 사회를 재생산하는 풍요다. 한편, 이 가난은 대개 착취와 수탈의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난다. 누군가 부유해지려면 누군가 그만큼 가난해져야 한다. 부를 위해 가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가난의 반대는 정의다.


(143)

이상(理想)은 존중되기보다 외면당하기 쉽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인물이지만 경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의 급진적 가난과 보편적 형제애가 너무 이상적으로 보여 사람들에게 충격과 부담을 준 탓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으로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가 진정한 평화, ‘샬롬’을 누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었다. 전환이 화두인 우리 시대에 전환을 진정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불평등과 기후위기 극복에 필요한 ‘근본적인 전환’이나 ‘정의로운 전환’을 꺼내면 비현실적인 이상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상은 실현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갈 방향을 제시하여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데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154)

20세기 중반에는 전후(戰後) 세계를 주도했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합, 즉 국가와 자본의 조합이 시너지를 발생시켰지만, 그 세기의 끝자락에 이르자 더 많은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본+국가’보다 ‘자본|도시’의 조합이 부상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민주주의적 제도들을 후퇴시켰고, 또한 도시들은 점점 더 세계화에 밀착되면서 자본의 공간운동이 일으키는 부가가치를 쫓아 부유하는 유민(流民)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국가 단위로 발전한 민주주의적 특권, 즉 ‘국민’이 누리는 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아다녔다.


(160)

그러나 이런 착시를 걷어내고 보면, 최근의 극우 쓰나미 현상에서도 개신교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일부 극우적 분파의 활동이 막대한 사회적 파급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ㅇ리다. 전관훈 현상과 손현보 현상이 대표적이다. 전광훈은 글로벌 보수 헤게모니에 의해 개신교가 재편되면서 교회에 초래된 위기적 요소가 심화되자 그것을 자양분 삼아서 성공한 자다. 교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을 아스팔트 우파로 흡수함으로써, 그는 개신교를 너머 한국 극우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한기총의 시대가 저물고, 개신교 내에서 극우 혹은 강경보수의 자리가 줄어들자 그 불만세력이 전광훈에 합류하게 된 측면도 있다.


(164)

할머니 집은 오지 중의 오지에 있다. 방문진료센터에서 소양호를 빙둘러 차로 두 시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한다. 이곳에서 살았던 20여 년의 시간 동안 할머니는 아마도 자연스레 겨울마다 물을 아꼈을 것이다. 도토리를 쌓아놓고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처럼 수십 개의 플라스틱병에 물을 넣어놓고 겨울을 나야만 했던 할머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을 적게 먹는 습관이 들었다. 물 많이 마셔야 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얘기를 당당하게 했던 나는 그날 센터로 돌아가 하수구 수리업체 연락처를 열심히 뒤적거렸다.


(166)

“와 이런 게 가능해?”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인공지능(AI)이 환자 간호, 간병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던 발표회 자리였다. 다인실 병실 천장에 설치된 어안렌즈 감시카메라(CCTV)는 환자와 의료진을 구분해 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을 정확히 감지했다. 낙상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간호사가 있는 스테이션에서 이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최소 수십억의 비용이 추가로 들 텐데 경영자가 이걸 도입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간병인이 필요 없어지고 간호인력도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170)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오뚜기 같다. 삶이, 세상이 아무리 쓰러트리려 해도 다음 번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 매번 한 공간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사는 어떤 식으로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바뀌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바뀌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나와 할머니는 어떻게든 서로에게 응답한다. 할머니가 당신의 혈당에 실린 삶에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고 싶은 의사로 나를 기억해준다면, 그것이 혈당이 좋아지는 것에 비할 수는 없어도 의미는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나이 들어 아픈 노인이 되었을 때 만나고 싶은 의사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는 현대의학의 엄밀함과 성실함을 믿지만 나의 노년을 그 믿음에 기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가 만나고 싶은 의사가 되고 싶다.


(178)

기술과 인간의 공존은 불가피하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술이 인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기술이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우리가 진정 염려해야 할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확인하고 안심하게 되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히 ‘자본가가 마구 가져다 써도 될 능력’으로 포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연의 지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을 위시한 기술의 발전이 노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예측에 있어서 ‘대체될 노동 대 대체되지 않을 노동’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한다. 그것은 또다른 ‘망각’을 초래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노동이 지는 특성이 어떤 변화 속에 놓일지가 가장 중요하다. 즉, 무엇을 잉여가치의 주된 대상으로 보느냐가 핵심이다. 이것이야말로 첨단기술 시대에 노동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답하기 위해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다.


(189)

자본주의 가치 원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주는 가장 핵심적 메시지는, 단순히 자본(생산수단)의 소유관계나 지도층 개인 특성(리더십)이 핵심이 아니란 것! 즉, 자본관계가 가치관계로 표현되는 물신주의가 근본문제다. 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건강하고 활기찬 관계가) 사물관계로 왜곡된 것이다. 인간관계나 생명관계가 아닌, 상품관계나 가치관계가 삶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 물신주의다. 일단 우리가 상품가치 내지 자본가치를 내면화하고 나면 그다음은 거의 자동으로 돌아간다. 맑스가 가치를 ‘자동 주체’라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19)

과학은 그 자체로는 재난에 과학이 되지 못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한 수많은 과학자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공학자의 양심으로 PAR의 위험성 문제를 제기한 공익신고자 같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개별적이고 특정한 현상일 수 있다. 재난을 유발하는 과학도 있고, 재난을 무마하는 과학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돌아보면 여러 국면에서 과학은 그러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과학이 ‘불확실성’을 이야기할 때, 정부가 정치인, 시민이 나서서 안전한 방향으로 과학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여 그 판단의 기준과 방향성을 명확하게 하여야 한다.


(228)

사람들도 알고 있기는 하다. 이 행성의 자연이 죽어가고 있고, 더불어 그 안에 살아가는 존재들도 절멸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당장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거나 자기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맹목적으로 이 위기는 기술로 자본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미디어세선 끊임없이 재생에너지나 탄소포집 등의 탄소 감축 및 활용 기술이 장미빛 미래로 그려진다. 심지어 화성 식민지 개척론 등 기술과 자본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선전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결코 경제성장을 가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에어컨이 잘 작동하는 쾌적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고된 노동으로 이루어진 안락한 소비의 일상이 지탱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하므로, 마이너스 성장은 재앙이 아닐 수 없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