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
양심이란 어른이든 아이이든 그것에 비난이 가해지면 끔찍한 존재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아이의 경우, 양심이라는 그 비밀스러운 짐이 바짓가랑이 아래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은밀한 짐 덩어리와 더해지면 엄청난 벌이 되는 법이다(내가 증언할 수 있다). 조 부인에게서 – 나는 집안 살림 중 어느 것도 조의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서 도둑질한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 도둑질을 한다는 사실로
인한 죄책감에다, 앉아 있을 때나 부엌 주변에 자잘한 심부름을 하러 갔다 오라는 지시를 받을 때마다
불가피하게 한 손을 바짓가랑이 속 빵 조각에 대고 있어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지자,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습지대에서 불어온 바람이 난롯불을 타오르게 하고 불길을 너울거리게 만들던 그때, 나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가 내게 비밀을 지키라고 겁맹하고, 다리에
쇠사슬 족쇄를 찬 죄수가 내일까지 마냥 기다리다 굶어 죽을 수 없으니 당장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 여러 번 젊은이가 나를 잡아먹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걸 죄수가 어렵사리 말렸지만, 그 젊은이가 타고난 조급함에 굴복하거나 시간을 잘못 알아서 다음 날이 아니라 바로 그날 밤 내 심장과 간을
빼 먹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고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이
공포감으로 쭈뼛 곤두서는 일이 있다는, 아마 그날 밤 내 머리카락이 틀림없이 바로 그 상태였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정도로 머리칼이 쭈뼛 곤두서는 일은 여태껏 없지 않았을까?
(127)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항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던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382)
“핍, 사랑하는
내 단짝. 인생이란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용접되어 결합된 구성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 어떤 사람은 양철공, 어떤 사람은 금세공업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인 거야. 그런 식의 구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게 생기면 반드시 만족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란다. 혹시 오늘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다면 그건 다 내 잘못이야. 너와
나는 런던에 같이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다. 또한 사적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만 알려지고 이해되는 장소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나면 안 되는 사람들이지. 이런 말은
내가 거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올바른 처신을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이제부터 넌 이런 복장을 한
마를 결코 더 이상 보지 못할 거다. 나는 이렇게 차려입으면 거북해.
나는 대장간과 부엌을 벗어나거나 습지대만 떠나면 실수를 저질러. 손에 망치를 들고 있거나
파이프를 들고 있을지언정, 대장정이 작업복을 입은 나를 떠올려본다면 넌 내가 저지른 실수의 절반도 찾아낼
수 없을 거야. 혹시 조금이라도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네가 내 집을 찾아와 대장간 창문으로
머리를 쑥 들이밀고 거기서 대장장이 조가 불에 그슬린 낡은 작업복 앞치마를 입고 그리운 모루질을 하며 옛날부터 해오던 익숙한 노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넌 내가 저지른 실수의 절반도 찾아낼 수 없을 거야. 나는 끔찍할 정도로 우둔한 사람이란다. 그래도 올바른 생각에 가까운
이런 최종적인 생각을 망치로 두드려 펴듯 생각해 낸 것이길 바란다. 그리고 하느님의 가호가 너와 함께하길
빌게, 사랑하는 친구야. 핍, 어이 내 친구,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