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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중도 배웅도 없이
  • 박준
  • 10,800원 (10%600)
  • 2025-04-11
  • : 24,069

최애가 돌아왔다. 변함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사라진 것들, 지나간 것들, 그리운 것들을 노래한다. 박준의 시에는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여백은 조용히 다가와 몇 번이고 응시하게 만든다. 나는 이 여백을 통해 박준을 오해하는데, 아마 이걸 사랑이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박준은 당황할 수 있다. 본인이 하지 않은 말들을 꼽으며 사랑한다 말하니까. 나에게 박준은 그런 사람이다.


8년 만에 돌아온 최애는 53편의 시와 1편의 산문과 함께였다. 1년에 7편 정도를 쓴 셈이다. 나는 이 느림을 원망하면서도 그 안에서 죽어간 시들이 떠오르면 다시 숙연해진다. 53편의 노래가 나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단어가 죽어갔을까. 얼마나 많은 문장이 버려졌을까. 얼마나 많은 시들이 사라졌을까. 그러나 그 단어들은, 문장은, 시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는 것처럼, 언젠가 다시 기적처럼 나타나 우리 뒤에 설 것이다. 느리게 도착하는 시. 그래서 만남이 더 기적 같고 기쁜 시.


박준의 시는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치길 기대하며 매일 터미널에 나가는 사람을 얘기하는데, 그의 시를 기다리는 마음과 꼭 같다. 기대했지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이루지 못했을 때 실망하지 않는 거고, 실망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는 건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지 하는 순간 등 뒤를 두드리며 조용히 서 있는 게 박준의 시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박준을 두고 다시 내 길을 간다. 나는 그의 시를 가져다 며칠은 지어먹었다. 눈으로만 읽기엔 아까운 시였으니까.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의 시를 꾹꾹 눌러 담고 싶었다. 섬세하지 못한 몸에 시는 거의 다 빠져 흘러가버렸지만,


나는 그 스침에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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