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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고백 - 미시마 유키오, 양윤옥 역, 문학동네(2009)

가면의 고백 (세계문학전집 11)

줄거리
쇠락해가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몇 차례나 죽음의 위기를 겪는 병약한 아이였기에 할머니의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다섯 살 무렵부터는 주로 육체적 활력에 넘치는 젊은이들이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동화 속 자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연상의 동급생 오미에게 은밀한 열정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의 여동생 소노코와 연인 사이가 되지만, 자신은 이성과의 관계가 불가능한 존재라고 확신하게 되는데……

페이지
p.75
하지만 내 최초의 사랑이 어떤 형태로 종말을 고할 것인지, 내가 희미하게나마 예감하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예감이 몰고 온 불안이 내 쾌락의 핵심이었는지도 모른다.

pp.82-83
겐로쿠 시절의 우키요에 판화에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얼굴이 놀랄 만큼 닮게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 조각에서 표방하는 미의 보편적인 이상도 서로 닮은 남녀에게로 향했다. 여기에 사랑의 비밀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의 아주 깊은 내면에는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상대를 닮고 싶다는 불가능한 열망이 흐르는 게 아닐까. 이 열망이 인간을 몰아세워서, 절대로 불가능한 것을 반대의 극점으로부터 가능하게 만들려고 무익한 몸부림을 치는 저 비극적인 이반(離反)으로 인도하는 게 아닐까. 즉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서로 닮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로 조금도 닮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러한 이반을 그대로 환심을 사는 데 이용하려는 심리적 시스템이 있는 게 아닐까. 더구나 서글프게도 서로 닮는 것은 한순간의 환영인 채로 끝나버린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소녀는 과감해지고 사랑하는 소년은 내성적이 된다고 해도, 그들은 서로 닮으려고 애쓰다가 언젠가는 서로의 존재를 건너뛰어 저 너머로, 이미 대상도 없는 저 너머로 떠나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p.252-253
이 책은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죽음의 영역에 남기려는 유서이다. 이 책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역설적인 자살을 의미한다. 투신자살을 영화로 찍어서 되돌리면 자살자가 맹렬한 속도로 계곡 밑으로부터 절벽 위로 날아 올라 되살아난다. 이 책을 씀으로써 내가 시도한 것은 그러한 삶의 회복술이다.
고백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나는 ‘거짓말‘을 방목했다. 원하는 곳에서 그 거짓말들이 풀을 먹게끔 했다. 그러면 거짓말들은 만복이 되어 ‘진실‘의 밭을 헤집지 않게 된다.
같은 의미로, 살에까지 파고든 가면, 살집이 달린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무익하고 정교한 하나의 역설이다. 이 소설은 그 생리학적 증명이다. 나는 시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어쩌면 나는 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시 자체는 바로 인류의 치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에 관한 ‘젊은 날의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내가 이 소설을 쓰려 한 것은 그 반대의 욕구에서이다. 이 소설에서는 ‘쓰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완전히 사상(捨象)된다. 작가는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적힌 것과 같은 생활은 예술이라는 지주가 없었더라면 순식간에 붕괴되는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 속의 모든 것이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예술가로서 생활이 적혀 있지 않은 이상 모든 것은 완전한 허구이며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완전한 고백의 픽션을 만들려 했다. ‘가면의 고백‘이라는 제목에는 그러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고전소설/문학선

기록
2025.11.16(日) (초판 1쇄)

다.

한 줄
독백이 긴 고백

오탈자 (초판1쇄)
못 찾음

확장
성 세바스티아누스 - 구이도 레니(1615)
p.46
그것은 제노바의 팔라초 로소에 소장된 구이도 레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였다.
프랑스 나르본 지방 출신으로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한 군인으로, 서양권에서는 끊임없이 다루어진 성인. 축일은 1월 20일(가톨릭)·12월 18일(정교회).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성인이다.
묶여 있는 헐벗은 백인이 화살을 맞은 성화는 대체로 그이다. 그는 저렇게 화살을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고, 성녀 이레네의 치료를 받고 회복된다. 회복된 후에도 황제에게 그리스도교 박해에 대해 직언하다 결국 몽둥이로 맞아 순교했다. 로마에 유해가 묻힌 부근에 자리한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이 있다. 현대에 와서도 회화나 사진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미시마 유키오는 생전에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해당 포즈와 구성은 BDSM의 클리셰다. 정확히는 에세머 게이(혹은 남성 서브미시브)의 클리셰. 화살에 맞으며 죽어가는 저 표정이 오르가슴에 달한 표정처럼 보인다는 사람이 많은데(사실 저 표정은 서양 미술사에서 종교적 황홀경을 묘사할 때 쓰는 전형적인 기법인데 그러한 전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오는 현상이다), 서양에서는 저 회화를 보고 BDSM에 눈을 뜨는 게이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사디스트 성향으로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보면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그린 회화를 보고 흥분해서 성기를 만지다 처음으로 사정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 말고도 성 세바스티아노의 그림은 자주 그려졌는데 그 이유가 자못 비범하다. 당시에는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도덕적 엄숙주의로 인해 여성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 어려웠는데 때마침 발가벗겨진 채 화살을 맞은 성 세바스티아노는 화가들에게 남성의 벗은 몸을 그릴 수 있는 ‘합법적인‘ 소재거리였다고 한다.

금각사 - 미시마 유키오, 허호 역, 웅진지식하우스(2017)
미시마 유키오의 정점인 『금각사』로 가는 첫걸음. 『금각사』가 더 읽기 쉬운 건 왜 그럴까. 미시마 유키오의 여정을 따라가보겠다.

저자 - 三島由紀夫(1925-1970)

원서 - 仮面の告白(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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