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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어쩌다 배구
  • 양자현
  • 11,700원 (10%650)
  • 2025-05-12
  • : 805
학교 스포츠클럽. 그것도 진짜 어쩌다보니 생겨버린 배구팀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보니 학교 스포츠클럽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필요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가 있다면 스포츠클럽 활동은 꼭 시켜보세요 라고 목소리 높이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로는 많은 제약이 있고 쉽지 않지만 말이다.

첫째는 지도자의 문제다. 이 책 속의 도민호 선생님은 체육 전담 선생님이다. 이런 분이 학교에 있고, 팀 지도에 열정을 쏟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는 킨볼 팀이 있는데, 이걸 가능케 하는 건 오직 한 사람의 역할이다. 6학년 담임인 그 선생님은 해마다 맡은 반 아이들을 데리고 팀을 만든다. 운동실력이 좋아도 그반이 아니면 참여할 수 없으니 그반에 배정되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실력자를 뽑아 꾸린 팀이 아닌 단순 학급팀인데도 이들은 해마다 예선을 통과하여 잠실체육관에서 본선경기를 치르고 최소 동메달이라도 따 온다. 이걸 보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선생님의 전보 시기가 다가오자 학교에서 붙잡아서 1년 전보유예를 하셨다. 이제 가시게 되고 같은 급의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면 과거의 영광은 전설이 될 수 있다.

두번째는 선수들의 문제다. 선수들의 실력을 키우는 건 위에서 봤듯이 지도자의 역량이 크게 좌우하니 실력이 큰 문제는 아니겠다. 간혹 도저히 경기에 끼울 수 없는 깍두기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바로 나 같은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연습과정에 같이 하다가 시합이 다가오면 스탶으로 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인드다. 힘든 연습을 이겨내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는 마인드. 우리 학교 팀이 왜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두나 혼자 생각해 봤는데, 이런 것이 가능한 동네여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자가 요구하는 시간투자를 할 수 있는 아이들. 이건 사실 아이들의 문제라기보단 부모들의 문제이다. 운동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팀웍은 더더욱 그렇다. 그걸 봐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교사인데, 올해는 체육관을 통과해서 교실로 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들어서면 벌써 책임감있는 아이들 두세명이 나보다도 먼저 와서 킨볼에 바람을 넣으며 아침 연습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있으니 그런 결과가 가능한 것이다.

배구 동화는 처음 본다. 사실 나는 배구 팬도 아니고 이게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우와, 청소년기에 읽었던 스포츠 만화의 박진감과, 완전하지 못한 실력에서 오는 긴장감과, 그걸 넘어서는 팀웍의 감격이 느껴졌다. 아주 잘 쓰신 스포츠 동화라고 생각한다.

모든 설정이 흥미롭게 잘 구성되었다. 일단 배구팀을 만들게 된 배경부터. 여기에서 배구를 원래 잘 아는 팬은 장지민 한 명 뿐이었다. 요즘 체육 시간에 배우는 종목이 배구였고, 도민호 체육 선생님이 모둠별로 배구에 대해서 소개하는 영상제작을 수행평가로 내주셨을 뿐이었다. 그런데 배구 팬인 지민이가 영상을 너무 끝내주게 만들었다. 팀원들의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고 멋진 장면만을 연출해서. 그런데 이 영상이 어느날 유명해졌다. 바로 지민이의 우상인 강인해 선수가 sns에서 공유를 한 것이다! (강인해 선수는 현실로 치자면 현역 시절의 김연경 선수쯤 되는 것 같다.)

멋진 영상이었지만 당연히 악플도 달렸다. 특히 인근 선사초 배구부원들의 도발은 이 모둠 멤버들을 격분시켰는데, 그바람에 앞뒤 구분 못하고 도발에 넘어갔다. 토스도 겨우 하는 아이들이 걔네들과 한판 붙기로 한 것이다. 결국 수행평가 모둠은 졸지에 ‘은강초 배부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설정, 연습과정이 실제 경기 장면보다 훨씬 길다. 딱 3분의 1씩이라고 하면 되겠다. 이 책의 차례는 1세트, 2세트, 3세트인데 3세트가 선사초와의 경기 장면이다. 1,2 세트도 재미있고 특히 3세트는 배구 경기 장면을 이렇게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 그 옛날 스포츠 만화를 읽던 추억을 소환한다. 외인구단 류의 만화들 말이다.

외인구단? 그렇다, 주류가 아닌 걸로 치면 아무 경험도 없는 얘네들도 바로 그렇지 뭐. 그렇다고 진짜 외인구단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건 이제 너무 식상하다. 작가님은 경기 결과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것만은 스포하지 말아야겠다.ㅎㅎ

6명의 배구 멤버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구성도 각 인물의 특성과 마음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며 흥미를 더해준다. 체격조건이나 운동능력, 특기가 각각 다른 아이들이 각자에게 맞는 포지션을 부여받아 거기에 맞게 성장해 가는 모습들 또한 흥미롭다. 심리적 위기들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도 감동적이고 경기로 승화시키는 모습은 감격을 선사한다.

선수의 길은 특별한 능력자들이 가는 것이지만 선수가 아니라도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는 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나 같은 최저 기능자는 다른 역할을 찾아봐야겠지만... 부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빈다. 현실은 반대로만 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이 널리 읽히며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분다면 참 좋은 일이겠다. 물론 현실의 아름다움은 작가가 만들어내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 점은 감안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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