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호스티스를 시작해 밤 12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됐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앞서 말한 자칭 ‘혁명가‘ 남자가 동지들과 함께 논의를 하다가 내게 "밥 좀 해 줘." 하면서 참 쉽게도 부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진짜 맹추 같다 싶은데 당시에는 그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마치 ‘밥을 지어야지‘하고 명령하는 듯했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면서도 난 밥 짓기를 서둘렀다.
생각해 보면 여자는 신좌익 운동 내부에서 암컷으로 살았다. 등사판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혁명가를 자처하는 남자들의 활동 자금을 모으려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고, 가사 육아 빨래 등 수면 아래에 있는 거대한 빙산처럼 많은 일들을 했다. 일상을 꾸리기 위해 하는이 무겁고도 부담스런 일들을 암묵의 폭력으로 강요당한 것이다. 폭력은 금세 알 수 있는 물리적인 폭력만이 다가 아니다. "자 이제부터는 트로츠키 Leon Trotsky 식으로 한번 논리 전개를 해 봐." 하거나 "프롤레타리아로서 의식이 낮다"든가 하는 말로 위협하고, 싫은 내색을 보여도- P145
벽에 걸린 꽃마냥 취급하고서는, 모두가 하찮게 여기는 일만 묵묵히 하게끔 하는 것도 폭력이다.-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