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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_기후위기 시대의 중심 가치, 돌봄

기후위기 시대에 돌봄에 대한 또다른 인식의 전환은 돌봄의 대상을인간에 한정하지 않는 것이다. 조미성에 의하면 기후돌봄은 ‘생태적 돌봄‘으로서, 돌봄을 비인간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난잡한 돌봄‘이라고 명명하는데 그 뜻은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다. ‘난잡함‘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식의 행동을 뜻하는데, 그만큼 인간, 비인간을 가리지 않고무차별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용어다.
이때 돌봄의 대상은 심지어 생물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즉 사물도 돌봄의 대상이 된다. 우석영이 소개한 철학자들은 사물도 생물처럼 잠재역량과 생기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제인 베넷에 의하면, 물질의 구멍, 즉 "결정 사이 빈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유원자들의 진동이바로 사물의 생기이며, "세계를 구성하는 데 참여하고 있는 행위주체라는 점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그것이 어떤 성격의 물질이든 존재론적 위계구조상에서 우열의 위치를 점하는 자들일 수는 없다. 우석영에 의하면 이러한 신유물론적 사유는 "거의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그 밑바닥부터 붕괴시킨다."- P235
손우정_민주주의의 근원에 다가서기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근원적 의미, 본질은 무엇일까? 고대에는 이것이 명확했다. 민주주의의 어원 그대로 ‘민중의 지배‘다.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원리, 내일 내가 앉아 있을 수도 있는자리에 오늘 앉아 있는 이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발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동일시되고 있는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 선거는 귀족정을, 추첨제는민주정을 의미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급진적‘이라는 말과 ‘근원적‘이라는 말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현실의 민주주의를 계속 급진화하면, 그 궁극적 지향과 가치는 근원적 민주주의로 향해 가기 때문이다.-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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