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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 마거릿 애트우드
  • 16,200원 (10%900)
  • 2019-10-18
  • : 1,112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먼저 훌루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와 원작 소설로 그리고 이번에 그래픽 노블로 모두 세 번 만났다. 텔레비전 시리즈와 원작 소설은 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그래픽 노블은 두 장르를 적절하게 배합한 섞어찌개 느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은 오브프레드(드라마에서는 오프레드로 들린다)는 프레드 사령관에게 봉사하는 시녀다. 그들이 사는 공간은 예전에 미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신정국가 길리어드라는 이름의 해괴한 나라다. 심각한 기후변화와 오염으로 불임이 일상화되었다. 계속되는 이웃나라들과의 전쟁 그리고 인구 감소로 국가 길리어드는 존속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여성의 권리가 최악인 길리어드는 아이들의 재생산을 위해 가임 여성들을 그야말로 국가의 자산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기존에 자유로웠던 세상을 경험했던 오프레드 같은 여성들이 고위직 사령관들에게 성적으로 착취되고, 오로지 아이의 생산을 위해 도구로 인식되는 미래 사회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같은 여성인 아주머니들이 붉은 옷의 흰 베일을 쓴 시녀들을 엄격하게 관리 감독한다. 아니 그전에 예전에 자유인이었던 여성들을 재교육하는 수용소인 "레드 센터"에서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교화하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여성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노예화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길리어드의 실질적 지배자들인 사령관들은 비밀첩보기관인 “아이”를 동원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쿠테타 이후, 길리어드는 신정국가를 선포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하나씩 차례로 폐지한다. 우선 직장에서 여성들을 모두 내쫓았고, 그 다음에는 은행 계좌를 동결시켰다. 이런 조직적인 차별과 혐오를 동원한 억압은 결국 여성들을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국가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게 된다.

 

과거 오프레드의 어머니는 여권 신장을 위해 최일선에서 가열차게 싸웠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어떤 자유도 거저 얻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권도 마찬가지다. 여성참정권 투쟁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희생된 되면서 이룩된 것이 바로 지금의 보통선거권이다. 이러한 투쟁을 통한 권리들의 획득은 지난하고 어려웠지만, 길리어드의 케이스에서 보듯이 박탈은 너무나 쉬웠다.

 


최근 본 영화 <안테벨룸>에서 보듯이 자유인이었던 주인공이 어느 날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납치되어 18세기로 돌아간 것 같은 미국의 목화농장에서 노예화되는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죽음을 앞세운 위협과 상상 그 이상의 폭력 앞에 버틸 재간은 없었다. 수용소 내에 오프레드와 다른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존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다른 선택지는 현재에 순응하는 것 외에는 처음부터 부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령관들이 그들이 꿈꾸는 신정국가 길리어드의 교조처럼 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특별한 장소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했다. 프레드 사령관이 오프레드를 데리고 그런 공간에 가서 쾌락을 즐기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시민들에 대해 법치주의를 표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엘리트 권력 계급들은 탈법과 합법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 뭐가 문제냐는 식의 대응을 연일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과연 길리어드와 다른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인구 감소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십 수 년 전부터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오히려 인구 절벽 위기가 조만간 현실화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길리어드의 사령관들처럼 우리네 위정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긴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이 어떤 하나를 해결한다고 해서 일도양단의 기세로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시급한 주택문제부터 시작해서 출산, 보육, 사교육 그리고 취업과 고용에 이르기까지 이미 구조화된 여러 문제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거대한 인구 감소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단순하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리는 사실을 그들은 과연 모를까. 어쩌면 지금의 이 시스템이야말로 자신들의 이익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에 굳이 수리하거나 개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픽 노블 <시녀 이야기>에서 색감의 역할이 개인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아무래도 시녀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색인 붉은색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훌루 드라마와 그래픽 노블에서는 강렬한 붉은색이 효과적이었다. 개인이 지닌 열정은 국가 아니 기득권층을 위한 추악한 희생이라는 방식으로 강제되었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지우는 복장의 규제 역시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의 한 가지 특징을 드러내지 않나 싶다.

 

국가 길리어드는 또한 여성들이 책을 읽는 것을 금지했다. 우리는 현재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보고 들을 게 너무 많다. 예전에는 검열이라는 무식한 방식으로 정보의 유통을 원천 차단했다면, 현대에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가짜와 진짜를 뒤섞은 진위를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미디어 소비를 부추긴다. 거기에 확증편향이라는 요소까지 개입되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는 차단하는 방식의 선택적 미디어 소비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미디어 자체가 플레이어가 돼서 선동에 나서는 판이니 할 말이 없다.

 

월초에 만난 그래픽 노블 <시녀 이야기>를 되짚어 보니 정말 다양하고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주의, 차별과 혐오, 인종차별, 인구 문제, 전체주의 국가의 형성, 불평등하게 설계된 사회 구조적 모순, 암울한 미래의 디스토피아 등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re-creation)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오늘 미국의 어느 기자가 자국의 대통령이 방문한 나라 수장에게 왜 그 나라의 내각에는 여성이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나는 순간, 소설 속의 가상 국가 길리어드의 프레드 사령관에게 외국의 기자가 질문한 줄 알았다. 가장 최근에 만난 쉬르레알리스틱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보면 현실인지 픽션인지 헷갈릴 때가 있더라.



 

[뱀다리] 5년 전에 책벌레로 소문난 배우 엠마 왓슨이 파리에서 <시녀 이야기> 백 권을 감추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문득 우리도 그런 이벤트를 하는 배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깜찍한 상상을 해봤다. 아 참,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지! 깜박했다. 아니 찾아다가 중고서점에 팔아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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