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고즈넉한 산자락 아래 자리 잡아 자연과 함께 물아일체가 된 듯 고요하고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 따윈 허락되지 않는 곳으로 기억한다. 종교는 다르지만 여행 중에 가끔 들를 때면 한국 건축은 주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잘 녹아들게 지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중에서 오래된 사찰은 유구한 역사가 고스란히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빛바랜 창살로부터 풍겨오는 기운이 있다. 도시 안에 지어진 사찰조차도 그 특유의 분위기와 멋스러움이 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잠시 적막한 공간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템플 스테이를 하듯 누구에게나 열려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전국을 다니며 답사한 산사 중에 선암사, 부석사, 무량사, 금산사, 수종사, 운주사, 봉은사를 골라 책으로 엮었는데 힐링 에세이라기 보다 산사 건축 답사기에 가까웠다.
특히 쉬어가기 코너와 고건축 뜯어보기는 산사 건축 양식의 거의 모든 것을 펼쳐놓은 것처럼 주변을 탐색한다. 대부분 정확한 용도나 이름조차 모른 채 지나쳤을 이야기들을 정리해놔서 나중에라도 산사에 들른다면 참고해 봐도 좋을 내용이었다. 책에서 특이한 점은 때론 4컷 만화처럼 저자가 자신의 본업인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십분 발휘하여 그린 그림들로 가득 채워 넣었다. 사진 위주가 아닌 답사하며 직접 그린 그림들 덕분에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산사와도 제법 잘 어울렸다. 특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주말마다 산사를 다녔다기 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작은 도피처이자 마음을 달래줄 공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외지인을 배척하지 않고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도 모두 받아줄 것만 같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 복잡한 내용을 가진 책이 아니라 쉽게 읽힌다. 읽으면서 마음이 치유받는 느낌도 들고 예전에 갔었던 산사도 떠올리게 된다.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산 능선을 따라 지어진 산사가 어색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였지만 현재는 무교인 저자는 지난 2019년부터 5년 동안 백여 곳이 넘는 산사를 찾아다녔다고 하는데 2~3주에 한 번꼴로 다닌 셈이다. 자신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저자는 주말마다 산사를 오가는 동안 무슨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 산사는 수백 년간 그 자리를 지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심어주었는데 그곳에서 무엇을 안고 왔을까. 해가 갈수록 피폐해지는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질투와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내려놓고 치유받을 숲속 자신만의 방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