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살아온 세계에서 말은 자주 사람을 배신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으며,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실제로 괜찮아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성심껏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달력에 X표를 그었다. 그날 하루를 겨우 버텼다는, 일종의 ‘생존 기록’ 같은 표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하루를 지운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그런 말은 책에나 나와요." 그 웃음에는 비웃음도 공감도 없었다. 받아들이고는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희망이 무서운 사람들. 희망을 품는 순간 더 크게 다칠까 봐 조심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X표만 남겼다. 나는 그 벽을 단번에 뚫 자신이 없었다.
(...)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책에 있는 말이라도, 내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말이라면 그것은 ‘진짜 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교과서의 문장을 앞세우지 않고 그의 말을 먼저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렇군요. 날짜를 지우는 데… 본인만의 의미가 있네요." 내 의견이 아닌, 그의 경험이 먼저였다.
몇 주 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은 X 대신 O로 표시해요." 내가 고개를 들자 그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덧붙였다. "하루를 지운다는 느낌보다… 살아냈다고 기록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요." 그 말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변화였다. 내가 준 문장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 문장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치료는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답을 찾도록 옆에서 버티는 일이라는 것. 마음의 속도를 억지로 앞당기지 않고, 그가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함께 그 자리에 머무는 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