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아날로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오십대의 시작을 알려준 만화 <동경일일>
- 직장인이 본 사실적 묘사를 중심으로 1
* 만화를 보고 쓴 글입니다. 만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겐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4화에 나오는 일본 만화를 일일이 찾아서 올려놓은 글을 보고는 정말 대단한 만화 고수들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 보지 않은 만화였어요.
* 맨 처음 <동경일일>을 보고 감탄했던 건 안경 그림자였습니다. 안경테를 수리한 테이프와 못마땅할 때 미간에 잡히는 주름, 각자 다른 모양의 눈썹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과 질감도 다시 볼 때마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프로(Afro) 혹은 심한 곱슬머리를 두둥실 구름처럼 수채화로 질감을 표현한 것도 재밌었습니다. 삼층 건물을 한 컷으로, 때로는 땅에서 하늘까지를 삼단으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들도 좋았습니다. 디지털로 작화가 이루어지는 요즘에는 어떤 웹툰들은 색채나 그림과 구도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정성들인 펜선을 느낄 수 있는 그림과 독특한 구도와 구성에 눈이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읽을 때마다 내용과 인물을 조금 더 알게 됐습니다.
시오자와씨를 응원하며
시오자와씨는 틀림없는 사람이자 동료입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스승님이 알려주신 직장인의 두 가지 덕목은 “예측 가능하고 Predictable”하고 “일관되어야 Consistent”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란 업무를 하기위해 사람들과 만나는 곳인데도,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느라 회사 사람들을 자연인으로서 인간적인 관계에서 바라보기도 했던 시절에 해주신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업무를 하다보면 일어나는 일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기에, 기본적인 덕목에 대해서 알려주셨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시오자와 씨는 매우 좋은 동료입니다. 누구도 그의 특성과 특징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신입 시절부터 두드러지는 존재였습니다. 만화 잡지와 단행본을 출간하는 출판사에 취직했는데, 만화광인 그는 동기 누구보다 만화에 대한 전문지식도 높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삼십년동안 꾸준하게 다니던 직장을 제발로 걸어나오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덕업일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시오자와씨에게 만화 편집자로서의 삶은 ‘덕업일치의 삶’이었겠지요. ‘일신 상의 사유’로 사표를 냈고 수리가 됐습니다. 몇 차례 직장을 옮길 때 사표에 ‘일신 상의 사유로 사직을 희망합니다’라는 형식적인 문구를 썼습니다. 초기에는 뭔가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내는 게 구차해보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해볼 만큼 해봤고 말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안 맞는 사람이 떠나는 게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월급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직장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동의할 수 없는 회사의 의사결정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돈을 버는 것과 참아낼 수 있는 문화를 분리하고 싶었습니다.
30년간 다니며 전력을 다해 맡고 있던 일이 회사에 적자를 끼쳤다고 했을 때, 모두 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올까요 혹은 나와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0년간 한 직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명확한 업무를 하며 다녔다는 것은 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것이고, 잡지를 맡겼다는 것은 그의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을 만드는 일을 한 적은 없어 월 혹은 연간 얼마짜리 예산이 들어가는 업무를 맡겼는지는 모릅니다만,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시오자와씨의 역량을 높이 샀기 때문에 그 일을 맡겼겠지요. 그리고, 잡지를 내기로 결정한 것도, 그에게 맡긴 것도 회사이니, 책임도 회사에서 지는 게 맞겠지요. 회사 전체의 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다면, 통상 이런 경우에는 흑자를 보는 어떤 사업(잡지, 단행본)과 적자를 보는 어떤 사업(잡지, 단행본) 사이에서 정리를 하게 됩니다. 적자를 안고 사업을 계속할 지, 혹은 접을 지에 대해서요. 회사의 존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실패한 어떤 일은 정치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의미있는 시도가 되어 새로운 시도를 한 탁월하고 용기있는 사람으로, 어떤 경우에는 보복성으로 무능력한 사람으로 정리가 되겠지요.
사표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시오자와씨가 받은 월급보다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기 작가로 연재를 하고 있는 초사쿠 씨를 발굴하고 23년 동안 담당을 했으며, 신인 아키오 작가도 가능성을 알아보고 담당을 하면서 책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키오 작가는 나중에 후배 히카리가 담당하면서 <은빛텐트>라는 히트작을 내게 됩니다.) 담당했던 기간에 인기를 얻을 수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의 안목으로 돈이 되는 작가로 성장한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안목은 이미 높은 경지에 있다고 직장 내에서 인정받았을 겁니다.
하나 더 언급한다면, 폐간된 잡지 <코믹 밤(夜)>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창간을 준비하면서 편집장인 ‘시오자와 씨가 거의 대부분 설득해서 따낸 연재 작품들이 실려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라인업이 더 없이 훌륭했고, 작품은 더더욱 좋았겠지요. 그런 구성으로 잡지를 낼 수 있는 편집장은 아마도 시오자와 씨 말고는 없었겠지요. 출판사 내에서 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도요. 출판사에서도 그런 상징적인 잡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최종 폐간하기로 결정이 났고, 육개월 후 시오자와 씨는 사표를 냅니다.
마지막 출근하는 날, 시오자와씨는 이십삼년간 일주일에 사흘씩 만나온 초사쿠 작가를 만나 사표 낸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힘써주신 작가분들께 큰 폐를 끼치고 말았어요… 이게 제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분명 거짓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이게 정말 다였을까요?
실제 시오자와 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삼십년간 다닌 회사에서 관리직 트랙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만화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만은 누구보다 인정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담당했을 때 인기를 얻는 단행본도 있고, 인기를 얻지 못하는 단행본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며 회사 내에서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회사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지만, 동의할 수 없었을 겁니다.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에 부딪쳤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아마도 만화가와 함께 책을 만드는 현역의 즐거움이지 않았을까요? 늘 책을 만들어오던 사람이었으니까요.후배 편집자 히카리 씨와 아오키 작가가 대립하는 초기에 자신에게 SOS를 치는 두 사람을 보며 존재감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 현역들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선배로서 후배가 상담을 해오고, 실무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을 때는 왠지 기쁜 마음에 공감했습니다.
‘폐간의 쓴맛을 봤던 건, 제가 독자와의 괴리를 인식하지 못한 탓입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창간한 <코믹 던(dawn)>도 별로 달랐을 것 같지는 않아요. 좋은 작가가 그리는 좋은 작품은 독자들에게 닿을 거라는 믿음이 변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코믹 밤(夜)>보다도 더 타협하지 않고, 독자와의 괴리를 인식하기보다 좋은 작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궁극의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코믹 던(dawn)>을 창간하니까요.
시오자와씨는 아마도 현실에서는 희귀해진 편집자가 아닐까 합니다. 만화가의 입장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이겠지요. 작품 고유의 색깔을 기억하고, 좋은 점과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어내고, 예의바르지만 때론 부딪치면서 전달할 줄도 아니까요. 그러면서도 만화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동료가 있다면, 지켜주고 싶을 것 같습니다. (마츠모토 타이요 작가에게 시오자와씨와 같은 편집자가 있었는지, 혹은 이런 편집자가 있었으면 하는 상상인지는 나중에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미디어에서 회자되듯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개업하거나 투자를 하지않고, 정말로 좋아하는 만화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잡지를 창간하면서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퇴직 후의 삶이 부럽기도 합니다. 뻔한, 다시 말하면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가는 시오자와씨의 제 2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시오자와씨가 새로 시작한 퇴직 후의 삶이 다른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