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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우트 기호속에서
  • 세상을 바꾸는 언어
  • 양정철
  • 13,500원 (10%750)
  • 2018-01-25
  • : 2,615

저자는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채워야할 생활 속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왜 굳이 언어냐면, 저자는 ‘언어가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는 이른바 언어결정론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시작한다는 신념을 가졌는데, 그 생활을 채우는 것에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그 언어가 바뀌면, 우리 의식과 문화도 바뀐다. 그가 생각하는 ‘언어 민주주의’다.

 

그러면서 책의 상당 분량을 이 잘못 사용된 언어를 바로잡는데 할애한다. 잘 모르고 있던 게 많다. 혼혈이 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을 무식하게도 몰랐다. ‘사과 잘하는 법’ 같은 챕터는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부터 언론, 정치, 행정, 사법 분야까지 망라한다. 분야가 넓다보니 언어 사용에 조금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상식적인 수준에 머무는 면도 더러 있겠지만, 우리가 큰 고민 없이 사용하는 말과 글이 어떤 차별을 담고 있으며 또 어떤 욕망으로 빚어져 있는지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읽으면서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저자가 현 대통령과 함께 일한 것을 굳이 ‘모신다’고 표현한 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흔히 듣게 되는 “과장님을 모신다”는 표현이 평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인 것은 알겠지만, 언어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에서 굳이 이 모신다는 표현을 거듭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모신다의 사전적 의미(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를 가까이에서 받들다.)로는 틀린 표현이 아니다. 저자의 선의도 이해된다. 그러나 이 모신다는 말에는 이미 주종관계가 확립되어있다. 동등한 관계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무협지에 나오는 말 같다. “괘념치 마라”는 표현처럼). 저자 또한 당시에는 업무 관계에 있었을 텐데, 업무 관계에서는 직상 상사도 동료다. 함께 일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모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대단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 유서에 대해 저자가 “너무나 잘 짜인 시적 구조”라며, 다른 시인의 “무섭토록 탁월한 절명시”라는 찬사마저 인용하는 것은 조금 어리둥절하다. 저 짧은 유서를 단락으로 나눠서, 첫 단락은 절박함과 비장함을 담고 있고, 두 번째 단락은 결심의 사적 이유를, 세 번째 단락은 공적인 당부를 담고 있다는 식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다소 지나쳐 보인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의 죽음은 충분히 비극적이고 유서는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또 각별하기 때문이다. 분석하는 순간, 유서는 그의 생을 담은 육성이 아니라 어쩌면 문학의 일부가 되고 만다.(그의 분석은 수험서에 나오는 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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