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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우트 기호속에서
  • 열정
  • 산도르 마라이
  • 8,100원 (10%450)
  • 2001-07-02
  • : 3,242

출근시간 대 지하철 1호선 용산행 급행을 타면, 그 비좁은 객실 사이로 사람들을 밀치며 오가는 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항상 같은 옷, 같은 마스크, 하는 일도 신문 수집으로, 같다. 타인에게 별 관심없는 내가 이 할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은 단 하나, 객실 연결 칸 쪽에서 책을 읽는 나를 자주 밀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었다가, 다음에는 분노였다가, 종내는 감정이 없다. 익숙하니까. (오, 익숙하다는 우리의 모든 비극) '왜 갑자기 할아버지 얘기를 쓰는가' 하고 잠깐 멈췄다가, 조금 전 마지막장을 덮은 소설 <열정>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아마, 소설 속 화자가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리라. 물론 소설 속 할아버지는 폐지를 줍진 않지만.

 

화자에게는 영혼을 나눈(혹은 나누었다고 믿는) 친구가 있고,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을 살해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갑자기 도시를 떠나버린 친구의 집에서 아내와의 묘한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그 이후 아내가 죽을 때까지 8년간을 별채에서 칩거하고, 아내가 죽은 이후에는 고독 속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아마, 진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말은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고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대답은 말이 아닌 ‘실제 삶으로써’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말로 무엇을 물어 볼 수 있겠나? 실제 삶이 아니라 말로 하는 대답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41년 간의 긴 기다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꼭 그 한마디의 말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기쁨도 슬픔도 없이 비슷한 하루하루를 사는 늙은이에게 그러한 하나의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 하잘것없는 진실, 썩어 없어진 육신의 비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결국 화자가 온 생을 걸고 확인하는 것은 하나이다. 우리의 열정이 가치가 있었는가? 그러한 열정이 있었으므로, 우리의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 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그 지독한 시간을 보낸 여든 넘은 늙은이의 말. 열정.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래도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하는 존재인가요? 아니.

그렇다면 41년간을 고독 속에서 지내며 기다린 이유는 무언가요? 진실을 찾기 위해서....

아니. 불타오르던 열정. 이제는 온기를 다 잃어버린 그 열정의 곁불이나마 쬐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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