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가 쓴 자전적 기록.
이 책의 특기할만한 점은, 아우슈비츠에서 행해졌던 반인륜적인 행위의 잔인함을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책 제목에서 도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인간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을 시도했다는데 있다.
자극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 상황에 무지한 독자로 하여금 간접체험하게 하여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게 하지만,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키고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이미지만을 각인하는데 그치고 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가 히틀러나 괴벨스 등 '소수의 비정상적인 인물'이 만들어낸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시대 이전까지 진행되어오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주의적인 관점이 맞춤한 상황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는 철저한 인식인 것.
우리는 오감을 강렬히 자극하는 상황일 수록 그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그 이미지에 동화되고 함몰되는 허무주의적 폐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작가의 감정적이지 않은 서술은 존경할 만하다)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가면을 차례로 고쳐쓴 국가주의라는 괴물이 현 시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그 끈질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써 이 책을 읽은 최소한의 의무를 행할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