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읽은 소설들 중, 그것이 너무 좋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것들이 있다.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어도 좋았던 책 중의 하나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지금보다 훨씬 감성이 풍부했던, 이성보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였던 시절에 읽었던 ‘제인 에어’에서 나는 무엇이 그렇게도 좋았던가?
이번에 재독한 이 소설은, 하필 샬럿의 동생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은 직후에 바로 읽어서인지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리드 부인이나 로우드 자선 학교에 대한 반감이 그때보다 덜 한 건 그동안 내가 훨씬 더 독한 내용의 영상이나 소설을 많이 접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인 에어의 이성적이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삶에 대한 진실한 태도가 좋았다. 끝내 터지고 마는, 마음 속 감정을 표출해 부당함을 비난하는 용기도 마음에 들었다. 착하다는 것이 참고 인내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제인은 헬렌 번스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연민을 가지고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속에 깊이 담겨있는 것을 덜어낼 줄 아는, 용서할 수 있는 강인함도 멋있었다.
이 소설은 제인 에어의 회상으로 그녀의 삶에 대해 연대기적으로 씌여진다. 작가 샬롯 브론테는 글의 여러 군데에서 ‘독자여(reader)’, 심지어 ‘낭만적인 독자여(romantic reader)’라고 말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을 의식한다. 제인 에어라는 한 여성의 전반적 일생이 주요 내용이지만 연애소설로 분류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제인 에어와 에드워드 로체스터와의 연애 감정의 시작과 전개가 상당히 재미있다. 밀당의 묘미가 있다. 그들의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이 첫 만남에서 대다수의 신분 높은 여자나 제인처럼 신분이 낮은 여자에게 볼 수 있는 보편성을 제인은 깨버린다. 제인은 본인의 개성과 생각이 뚜렷한 여자로 로체스터에게 각별한 첫인상을 남긴다. 제인 에어는 독립적이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여인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 사랑의 감정은 이성으로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인 에어가 가진 신분과 로체스터가 처한 상황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제인에게 마음을 연 로체스터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불행으로 인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넌지시 얘기한다. 그는 과거의 불행으로 잘못된 길을 밟으며 자포자기하고 타락했다고 한다. 본래는 그렇지 않지만, ‘운명에게 두들겨 맞아 단단하고 억센 사람이’이 되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로인해 그는 냉소적이고 오만하며 가혹한 인간이 되었다고도.… 그는 제인과 더불어, 제인으로 인해 다시 부드러운 사람으로, 희망적 삶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필드 저택의 3층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의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이것은 페어팩스 부인이 말한 ‘로체스터의 고초의 근원이나 성질(p.229)’의 가장 중요하고도 넘어설 수 없는 딜레마이며 운명이다. 의문의 남성인 메이슨은 심한 부상을 입고 떠나며 로체스터에게 분명 ‘그녀를 잘 부탁한다고’고 말하며, 로체스터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부분에서 왜 뜬금없이 약간의 눈물이 나왔을까? 모두에게 닥칠 불행과 시련을 미리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제인은 이들의 대화를 듣고서도 진실을 알아내지 못한다.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이 상황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화구라고 한다. 언제나 자신의 행복은 저당 잡혀 있고, 오점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범법이 아닌 과실로 인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속임의 결과에 의해 그는 괴로운 현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중에 밝혀지는 로체스터의 행동이 타당하다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무시하고 로체스터의 이 행동만을 쏙 뽑아 세상 모든 페미니스트의 공격의 빌미가 되는 것 또한 공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권에서 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보다는 훨씬 순하며 문장에서 사용되는 어휘 역시 단정하다. 그렇지만 내용은 상당히 페미니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제인 에어’는 그 당시 사회적 통념에서 많이 벗어나려고 한 여성이다. 브론테 자매가 자신들의 가난하고도 척박했던 삶을 넘어서려했던 의지가 그들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창조해낸 이 인물들의 개성적인 성격과 에피소드는 왜 그들의 글이 계속 고전으로 남아있는가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디다 대고 감히 그러느냐고요? 어떻게 감히 그러느냐고요? 사실을 얘기하는 것 뿐이예요. 제가 감정이 없기 때문에 애정이나 친절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P60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도 가혹한 속박, 너무나 완전한 침체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여성도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이란 집 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P195
자기의 외양에 관한 철저한 무관심이 엿보이면서 타고난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용모의 매력의 결핍을 벌충하는 다른 자질에 대해서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게 믿는 바가 있어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부지중에 그런 초연한 태도에 감염되면서 맹목적으로 그의 자신만만함을 든든히 여기게 되는 것이었다. - P237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다든가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는 것만 가지고는 제게 명령을 할 권리가 없으시다고 생각해요.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요."- P240
그러나 나는 질투하지 않았다. 아니, 설령 질투했다 하더라도 극히 드물게밖에는 하지 않았다. 내가 맛보았던 고통은 그런 말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잉그램 양은 질투의 대상도 되지 않는, 질투심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시시한 여성이었다. 언뜻 보아 모순되는 것 같은 말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난 진담을 하고 있으니까.-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