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 위의 승부사, 이세돌 씨의 인생, 바둑, AI론이다. 재밌게 읽었다. 유튜브나 TV에서 이세돌 씨에게 들은 재미난 이야기가 거의 실려 있었다.
2,000년이 넘는 바둑의 역사에서 아무도 3.3은 좋은 수가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인간의 믿음과 확신은 때론 얼마나 견고한 감옥인가. -p27
극초반 3.3침입은 프로 기사들에게 금기에 가까운 수였다. 하지만 알파고는 달랐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극초반 3.3을 뒀다. 인간에게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일화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도 수없이 많은 잘못된 믿음들에 둘러싸여 의심조차 못해보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는 미생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미생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확장이 가능하다.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고 실패 위험을 감수하는 길이 때로는 더 큰 가능성을 만든다., 무한함 속에서 흔들리고 편차가 생기더라도, 그 안에는 진짜 성장과 창조의 씨앗이 숨어 있다. -p71
책에서 꾸준히 강조되어 온 삶의 자세다. 이세돌씨 역시 익숙한 바둑계에서 은퇴해서 제 2의 삶을 살고 계시다. 우리는 완성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실패와 시련을 겪더라도 성장과 창조를 위해.
가르침이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라는 걸 아버지와 스승님을 통해 배웠다. -p186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바둑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에서는 통하는 철학이 존재한다. 상식에 기반해 판단하고, 감정보다 효율을,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안전보다 가능성을 좇는 전략. 이것이야말로 '수읽기'의 본질이며 내가 삶에서 지키고자 한 가치였다. 이 기준은 지금도 변함없다. -p219
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진짜 자신감은 반은 실력에서, 반은 근거 없는 믿음에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실력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믿음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둘이 균형을 이루면 부족함을 알면서도 다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감각. 나는 그것을 가장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자신감이라 생각한다. -p270
전에 근거없는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잘 설명하지 못했다. 이 글을 읽으니 공감이 가고 이해가 갔다. 나 역시 근거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강하다. 진화적으로 이성에서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들이대야 했다. 그래서 남자들은 거울을 보면 대부분 '나 정도면 괜찮은데?' 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부족하다. 진화적으로 안전한 전략을 택한다. 여성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짝짓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거울을 보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 책은 2/3 쯤 읽다가 뒤에는 크게 재미가 없어서 방치해 뒀었다. 요즘 연말이라 읽고 있는 책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앞부분은 이세돌 씨의 이야기가 많아 재밌었다면 뒷부분 AI에 대한 이야기들은 당연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들이라 흥미가 덜했다.
이세돌씨를 방송에서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 멋진 분이다. 이세돌 씨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