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 계급 억압 기구으로 전락한 법, 유산 계급 전유물이 된 제도들
현존 체제에 길든 노동 대중이 투쟁의 과정에서 성숙해진다는 일은,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시각’과 ‘생존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 대중은 성숙해진다.
1. ‘수혜자’에서 ‘생산의 주체’로의 정체성 전환
현재의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가치가 어디로 유출되는지 모른 채, 임금이라는 ‘시혜적 대가’를 받는 데 익숙하다. 투쟁의 과정에서 생산 현장의 경영 정보와 금융 체계를 확인하게 되면 비로소 ‘노동자의 가치가 자본가의 사적 이윤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구조’를 직시하게 된다. 이때부터 노동자는 ‘임금을 더 달라’는 수동적 요구자에서, ‘생산된 가치를 사회적 필요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는 생산의 주체로 스스로를 재정의하기 시작한다.
2. ‘각자도생’에서 ‘계급적 각성’으로의 확장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성실한 개인’이라는 틀에 가두어 서로를 경쟁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투쟁 현장에서 마주치는 타 부문 노동자들과의 단결은 노동자가 가진 파편화된 시각을 깨뜨린다. 이는 ‘직업적 성공이 곧 구원’이라는 기존의 믿음이 깨지고, ‘금융 자본이 무너지면 노동자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는 공동 의식이 형성된다. 이는 개인적 성취에 몰두하던 의식이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적 역량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3. ‘권위에 대한 의존’에서 ‘직접적 역량 발휘’로
노동 대중은 오랫동안 ‘똑똑한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관념 (전문가주의)에 길들여져 있었다. 성숙의 과정에서 노동자 평의회를 조직함에 따라 직접 현장을 운영하는 실무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다. 사측의 방해를 뚫고 전산망을 관리·감독하거나, 제한된 자원을 사회적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실무를 직접 처리해 보면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자들이 사실은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며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동 대중은 이제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획득하며, 타율적 지배에서 자율적 감독자로 성숙한다.
4. ‘자본주의적 반복’의 모순을 견디는 ‘혁명적 인내’
그러나 투쟁은 한 번에 끝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반동과 탄압을 동반한다. 초기에는 선거 결과나 일시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만, 투쟁이 지속될수록 노동 대중은 ‘이 모순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의 질병이다.’라는 것을 학습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노동자는 더 이상 당장의 승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체제 변혁을 위해 작은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를 공고히 하는 ‘전략적 인내’를 갖게 된다. 이것이 곧 혁명 계급으로의 성숙을 뜻한다.
결국, 이러한 성숙은 교육으로만 이론을 주입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적 소유’라는 울타리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는커녕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확인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노동 대중은 ‘우리가 없으면 세상은 멈추지만, 자본가가 없으면 세상은 더 안전하게 운영된다.’는 사실을 투쟁으로, 그리고 자신의 뼈저린 삶에서도 체득한다. 이 생활이 누적된 노동 대중은 더 이상 기존 체제에 길든 ‘국민’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계급’을 직시하게 된다.
유산 계급의 반동과 탄압 역시 혁명적 전진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 통과 의례’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반동과 탄압은 노동 계급의 정체성을 가장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용광로이다. 기존 정권이나 자본 계급이 가하는 탄압에 맞서, 노동자 평의회가 이 힘의 모순을 도약하여 전진을 멈추지 않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