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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읽고,


볼셰비키: 평의회 다수파의 부상

 

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 미국 출신 기자가 본 러시아 혁명으로, 20세기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두 차례의 혁명을 겪었다.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킨 2월 혁명과 임시 정부를 전복시킨 10월 혁명이 그것이다. 미국의 기자 존 리드는 2월 혁명 소식을 접한 후 급히 러시아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 10월 혁명의 전조와 진행 과정을 밀착 취재하여 기록을 남겼다.

 

그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전개를 폭로한 책’이라며 노동자들에게 직접 추천했다. 이 책은 1917년 10월 혁명 (구력 10월, 신력 11월) 전후 열흘간의 급박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기에, 당시 러시아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와 기존 봉건제가 무너진 후, 러시아는 사회는 두 개의 권력이 대립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놓였다. 하나는 케렌스키가 주도하는 임시 정부였다. 자유주의 자본가들과 온건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지속을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와 군인들의 자치적 평의회 기구인 소비에트였다. 소비에트는 ‘모든 권력을 평의회로!’라는 핵심 구호를 내세우며 인민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았다.

 

혁명 세력 내부에서도 노선 차이로 인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끄는 다수파인 볼셰비키는 타협 없는 즉각적인 무산 계급 혁명과 전쟁 중단을 선언했다. 반면 맨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중심의 온건파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여전히 전쟁 중이며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기에는 미숙하다는 판단하에, 전쟁을 지속하려는 임시 정부와 협력하는 길을 택했다.

 

이러한 격동의 상황 속에서 존 리드는 권력자들의 연설에만 주목하지 않았다. 참호 속의 군인, 공장의 노동자, 거리의 전차 운전수들이 나누는 말까지 집요하게 기록하며, 지배 계급이 무너지는 순간 인민의 의식이 어떻게 혁명적으로 변모하는지 추적했다. 혁명은 단순히 무력 충돌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볼셰비키 총사령부였던 스몰니와 시의회인 두마 등에서 밤새도록 이어진 정파 간의 대대적인 토론, 연설, 소책자 전쟁으로 권력의 정당성이 이동하는 과정은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이 모든 역동성을 철저한 계급적 관점으로 직시했다.

 

러시아의 경제적·군사적 혼란은 1917년 11월 7일에 갑작스럽게 분출된 것이 아니다. 이미 1915년부터 시작된 경제 붕괴와 전선의 무기 부족, 대규모 후퇴, 식량 부족, 그리고 1916년의 제조업 및 수송업 마비는 차르 궁정의 부패한 반동 세력이 독일과 독자적인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 고의적으로 감행한 사부타주 공작의 결과였다. 인민들은 이 파괴적 행위를 3월 혁명 (2월 혁명)으로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재산을 소유한 유산 계급은 차르의 권력을 빼앗아 자신들이 주도하는 프랑스·미국식 입헌 공화국이나 영국식 입헌 군주제를 수립하고자 갈망했으나,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업 및 농업 민주제였다.

 

러시아 노동자들이 폭력적이라는 당대의 비난에 대해 존 리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혁명적이었으나 결코 폭력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았으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제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자본 계급과 끝까지 싸울 준비를 마친 주체였다.’ 인민들은 한 폭군을 자본가라는 다른 폭군으로 대체하는 불확실한 특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투옥·추방의 위험을 더 이상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외세와의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이 태동했고, ‘다수파’인 볼셰비키가 승리를 거두었다.

 

레닌을 인민 위원장 (의회장)으로, 트로츠키를 외무 인민 위원 (외무장관)으로 하는 내각의 구성은 3월 혁명 직후부터 필연적으로 성장한 결과였다. 당시 서구 사회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이러한 ‘무지’를 비난했으나, 정작 이들은 1,200만 명이 넘는 협동 조합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평의회 체제를 스스로 구축할 만큼 뛰어난 조직력과 역량을 증명했다. 혁명적 이론과 실천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단련된 주체였던 셈이다.

 

물론 볼셰비키 앞에는 케렌스키 임시 정부, 코르닐로프 반란과, 두마 의회와의 등 온갖 적들과 난제가 산적해 있었다. 혁명가들이 의회 투쟁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유산 계급의 조직적인 사보타주도 잇따랐다. 그들은 소비에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통 체계를 마비시키고 내부 소요를 조장했으며, 공장 위원회를 탄압하고자 공장을 폐쇄하고 연료와 원자재를 빼돌렸다. 전선에서는 군 위원회를 와해시키기 위해 군사적 패배마저 묵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동적 책동은 오히려 볼셰비키의 계급 투쟁과 소비에트 수립에 정당성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같은 온건 사회주의 파벌들은 러시아가 사회 혁명을 수용하기에는 경제적·교육적 여건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무리한 권력 장악이 구체제의 복원을 부르는 반동을 초래할까 두려워 권력 행사를 기피했다. 러시아가 서구식 의회 국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유산 계급과의 협력을 요구하며 자본가들의 요구에 맞춰 자신들의 강령을 양보했다. 온건 사회주의자들은 유산 계급을 필요로 했으나 정작 유산 계급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결국 볼셰비키가 허울뿐인 타협을 뒤짚었을 때 온건 사회주의자들은 재산 소유 계급인 유산 계급의 편에 서서 혁명에 반발했다. 존 리드는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반복되는 ‘일반적’ 현상임을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볼셰비키는 단순히 파괴적 폭도 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건설적인 강령을 지니고 이를 실현할 조직적 힘을 갖춘 정당이었다. 그들이 제때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12월에 독일 제국군이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 주둔하며 러시아는 다시 차르의 전제 지배 아래 신음했을 것이다. 혁명 정부 수립 후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유산 계급은 이를 ‘모험주의적 경향’이라 폄했으나, 볼셰비키는 이미 대농장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할 체계, 노동자가 산업을 통제할 공장·작업장 위원회와 노동 조합, 그리고 지방 행정을 담당할 전국의 노동자·병사·농민 대표 평의회 (소비에트) 구조를 완비해 두고 있었다.

 

이처럼, 볼셰비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으나, 러시아 혁명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건이자 보편적인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존 리드는 미국 출신의 기자라는 한계를 도약하여 철저한 현장 취재로 당시 러시아에 고조된 혁명을 깊이 이해했으며, 이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평의회 (소비에트)가 지닌 본연의 역사적 해방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길잡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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