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과의 일화 때문에 궁금했던 <작품>을 결국(?) 읽어냈다. 처음 시도했을 당시에는 이상하게 몰입이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읽은 졸라선생의 작품 가운데 가장 순한(?) 소설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야기가, 말랑말랑하게 느껴져서 그랬던 건 (물론)아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이, 생활밀착형 고통과 마주한 기분이었더면, <작품>의 경우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라 조금은 거리를 두고 읽을수 있었기 때문에, 피부로 와 닿는 고통이 아닌, 상상으로 하는 고통의 세계였다는 뜻이다.
처음은 세잔이 졸라와 절교할 만큼 싫었던 지점들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마음은 사라지고, 읽는 내내 '고통' 이란 화두가 찾아왔다. 예술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고통, 예술가 주변인들의 고통, 예술을 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고통 고통... 다양한 색깔로 그려지는 고통을 따라가다 끝에 마주한 건 '숙명' 이었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에서도 신부가 절규했던 '숙명'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운명처럼 따라오는 숙명은 그래서 무섭다. 그러니 예술이 아니어도, 인생이 있다는(살아야 할 이유) 크리스틴의 절규가 클로드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게다. 오로지 창작을 통해서만이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에게, 다른 것들이 보일리 만무하다. 그동안 알음알음 인상주의 화가들에 관한 그림과 에피소드를 접한 덕분에, 졸라 선생이 그려내는 낙선전 풍경은 생동감 있게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예술을 사랑할 것 만 같았던 동지도, 성공과 실패로 우정에 금이 간다. 비단 예술을 하는 이들만의 모습은 아닐텐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어둠의 모습은 왠지 더 씁쓸하긴 했다. 누군가를 모함하고,깍아내리고,모방하는 방식..
클로드에게는 세잔의 모습만 있지 않았다. 클로드를 모두가 깎아 내리려고 했던 소설 속 이야기에 세잔이 화를 냈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졸라선생은 스스로 예술가이기를 고집한 클로드를 실패한 화가로 그렸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세잔과 졸라만 알 수 있는 에피소드를 다른 화가들의 이름으로 그려낸 것에 오히려 불쾌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상드즈(누가봐도 졸라선생...) 가 그려낸 화가들의 모습들,굳이 보이고 싶지 않은 예술가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것이 못마땅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작품>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예술가들이 보이는 치부가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내려진 창작의 고통이란 숙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품 하나를 완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독자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